한줄 詩

찔레꽃 - 이원규

마루안 2016. 8. 17. 09:10



찔레꽃 - 이원규



아버지가 돌아왔다


제삿밥 물린 지도 오래
청춘의 떫은 찔레 순을 씹으며
뼈마디마다 시린 가시를 내밀며
산사나이 지리산에서 내려왔다
흑백 영정사진도 없이
코끝 아찔한 향을 올리며
까무러치듯 스스로 헌화하며
아직 젊은 아버지가 돌아왔다


어혈의 눈동자 빨간 영실들이야
텃새들에게 나눠주며
얘야, 막내야
끝내 용서받지 못할
차마 용서할 수 없는 내가 왔다
죽어서야 마흔 번
해마다 봄이면 찔레꽃을 피웠으니
얘야, 불온한 막내야
혁명은 분노의 가시가 아니라
용서의 하얀 꽃이더라


하마 네 나이 불혹을 넘겼으니
아들아, 너는 이제 나의 형이다
이승에서 못다 한 인연
늙은 안해는 끝내 고개를 돌리며
네 걱정만 하더라


아서라 에비, 애비!
나보다 어린 아버지가 돌아왔다



*시집, 강물도 목이 마르다, 실천문학사








천적 - 이원규



생과부 울 엄니 나를 낳자마자
탯줄로 짠 그물로 네 평 점방을 차렸다
막걸리 국수 오징어 양초 포도 감기약
하내리 구랑리의 만물백화점
아직 젊은 마흔 살 암거미의 집이었다
처마 끝 외줄을 타고 날아간
유사비행의 좌파 아버지 거미에게는
집이 곧 덫이요 무덤이요 감옥이지만
서방도 없이 새끼를 낳은 화냥년
똥물을 뒤집어쓰면서도 차마
씨를 발설할 수 없는 무당거미의 집이었다
밤마다 소복을 입고 정화수
맑은 물방울을 거미줄에 매달며
남몰래 첫사랑의 천적 지아비를 기다리던
무당거미 울 엄니 하지만
엄니의 천적은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몰래 점방을 들락거리며
그게 입인 줄도 모르고
풍장의 오징어 눈깔을 빼먹고
미라처럼 시드는 포도알을 빼먹으며
거뭇거뭇 더듬이가 자라는
나 또한 그게 독인 줄도 모르고
날카로운 벌침을 쏘아
서서히 마취가 된 무당거미 울 엄니
그게 죄인 줄도 모르고
남은 생의 육즙을 쪽쪽 발아댔으니
나나니 나나니벌이었다
아버지의 나이 지나도록 야금야금
암거미의 몸을 파먹은 나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