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종점의 추억 - 나호열

마루안 2016. 8. 3. 21:49



종점의 추억 - 나호열



가끔은 종점을 막장으로 읽기도 하지만
나에게 종점은 밖으로 미는 문이었다


자정 가까이
쿨럭거리며 기침 토하듯 취객을 내려놓을 때
끝내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귀잠 들지 못하고 움추려 서서
질긴 어둠을 씹으며 새벽을 기다리는 버스는
늘 즐거운 꿈을 선사해 주었다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얼마나 큰 설렘인가
서강행(西江行) 이름표를 단 버스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유년을 떠나갔지만
서강은 출렁거리며 내 숨결을 돋우었다


그곳에 가면 아버지를 만날까
이윽고 내가 서강에 닿았을 때
그곳 또한 종점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내 몸에 잠들어 있던 아버지가
새살처럼 돋아 올랐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말한다
이 세상에 종점은 없다



*시집, 눈물이 시킨 일, 시학사








그림자놀이 - 나호열



미안하다 초대 받지 않았지만
나는 이곳에 왔다
내 자리가 없으므로
나는 서 있거나 늘 떠돌아야 했다
가끔 호명을 하면 먼 곳의 나무가 흔들리고
불빛이 가물거리다가 흐느끼듯 꺼지곤 했다


그림자는 우울하다
벗어버린 옷에는 빛이
빚으로 남아 있어 얼룩을 지우지 못한다


나는 내가 그립다
내 몸의 바다가 떠나고
소금이 될 때까지





# 시를 읽다보면 딱 한 줄로 마음을 움직일 때가 있는데 이 시는 여러 줄에서 내 마음이 녹는다. 이 세상에 종점이 없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안 것은 아니나 초대 받지 않았지만 이곳에 왔고 내 자리가 없어서 서 있거나 떠돌았다는 문구에 오래 눈길이 간다. 고단한 인생에서 시 한 줄로 눈이 번쩍 뜨일 수 있다면 이것만으로 시 임무는 충분하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