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누가 사는 것일까 - 김경미

마루안 2016. 8. 1. 21:49



누가 사는 것일까 - 김경미



1

약속시간 삼십분을 지나서 연락된 모두가 모였다
우리는 국화꽃잎처럼 둥그렇게 둘러앉아서 웃었다
불참한 이도, 더 와야 할 이도 없었다
식사와 담소가 달그락대고 마음들 더욱
당겨앉는데


문득 고개가 들린다 아무래도 누가 안 온 것 같다
잠깐씩 말 끊길 때마다 꼭 와야 할 사람 안 온 듯
출입문을 본다 나만이 아니다 다들 한 번씩 아무래도
누가 덜 온 것 같아, 다 모인 친형제들 같은데, 왜
자꾸 누군가가 빠진 것 같지? 한 번씩들 말하며


두 시간쯤 지났다 여전히 제비꽃들처럼 즐거운데
웃다가 또 문득 입들을 다문다, 아무래도 누가 먼저
일어나 간 것 같아 꼭 있어야 할 누가 서운하게도 먼저
가버려 맥이 조금씩 빠지는 것 같아


2

누굴까 누가 사는 것일까 늘 안 오고 있다가 먼저 간
빈자리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그 기척은 기척일 뿐
아무리 해도 볼 수 없는 그들에겐 우리도 기척일 뿐일까
아무리 다 모여도 언제나 접시의 빠진 이처럼


상실의 기척, 뒤척이는 그들은



*시집, 고통을 달래는 순서, 창비








사람 시늉 - 김경미



난 영 틀렸다― 삼일쯤 연이은 사람 약속엔 사람인 게 고통이 된다
커피 한모금에도 일주일의 잠이 고단해진다
하루의 불면은 열흘치 시든 과오들에 물을 준다
다 알면서도 나흘째 목요일에도 커피를 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밤 한시 삼십분, 동료 드라마작가가 힘없이 전화한다
멜로드라마 잘 안될 땐 무조건 배신 얘기 쓰라는데
재밌는 배신 좀 없나요?


심야 두시 오분, 기혼의 친구가 흐느껴운다
나 너무 오래 외로우니 무슨 짓이든 해도 되겠지


물속에 못을 떨어뜨린 자들만이 잠 못 이루는가
못에서 꽃을 기다리는 자들만이 서성이는가
누군가는 연꽃과 기도를 얻기도 하는 불후의 시간
차라리 더 캄캄한 어둠을 기다리는 저 먼 한강대교의 불빛 얼룩들
모든 게 영화세트장의 시늉 같건만 오지 않는 잠은
짐짓 해보는 연기가 아니다 과오들 또한 늘 그렇듯


멜로영화 속 추억의 회상장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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