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라면 먹는 저녁 - 이상국

마루안 2016. 7. 17. 23:43



라면 먹는 저녁 - 이상국



섭섭한 저녁이다
썰렁한 어둠을 앉혀놓고
눈 내리는 고향을 생각한다
마른 수국대궁에도 눈은 덮였겠지


고만고만한 지붕 아래서 누가 또 쉬운 저녁을 먹었는지
치킨 배달 오토바이가 언덕배기를 악을 쓰며 올라가고


기운 내복 같은 겨울 골목
주황색 대문집
페이스북으로
이름만 아는 여자가 나를 찾아왔다
머리에 눈을 이고 왔다
어디선가 다들 외로운 모양이다


산간 지방엔 폭설이 내린다는데
쓸데없이 섭섭해서
밥은 늘 먹는다고
저녁에 라면을 끓인다



*시집, 뿔을 적시며, 창비








고독이 거기서 - 이상국



동해안 국도를 지나다보면
바닷가에 '고독'이라는 카페가 있다
통나무로 지은 집인데
지날 때마다
마당에 차 한대 없는 걸 보면
고독이 정말 고독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독은 아주 오래된 친구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영혼이나 밤을 맡겨놓고
함께 차를 마시거나
며칠씩 묵어가기도 했는데
지금은 외딴 바닷가 마을에서
온몸을 간판으로 호객행위를 하며
사는 게 어려워 보인다


나는 언제나 길 위에 있으므로
그저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가끔 동해안 국도를 지나다보면
고독이 거기서
늘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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