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상처라는 말 - 이승희

마루안 2016. 7. 20. 23:52


 

상처라는 말 - 이승희



1.

살고 싶어서
가만히 울어본 사람은 안다
목을 꺾으며
흔적 없이 사라진 바람의 행로
그렇게 바람이 혼잣말로 불어오던 이유
이쯤에서 그만
죽고 싶어 환장했던 나에게
끝없이 수신인 없는 편지를 쓰게 하는 이유


상처의 몸속에서는 날마다
내 몸에서 풀려난 괴로움처럼 눈이 내리고
꽃 따위로는 피지 않을
검고 단단한 세월이 바위처럼 굳어
살아가고 있지


2.

손목
그어도 돼
여읜 손목 골짜기마다
아스라이 꽃 피우도록
끝없이 거절하는 일
죽을 만큼 분노하는 일
그리하여 용서를 구하는 일
낡은 사진에 오래 입 맞추는 밤이 다 지나려면 아직 멀었다는 말



*시집,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문학동네








맨드라미 피는 까닭은 - 이승희

 

 

상처로 물이 고인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물이 상처의 집을 짓고 있다.
그러므로 물을 들여다 보는 일은 상처일까 위로일까 나는 종일 물을 들여다본다. 그러는 동안에도 종양은 자라고 생살은 돋지 않았다. 사는 일이란 게 처음부터 상처 나는 일이었다고 맨드라미가 빨갛게 피었다.


손끝으로 물을 가만히 누르면 지루한 바람이 불어왔다. 얼굴을 물속에 묻고 참으로 진부하게 길을 묻는다. 물이 지워진 입, 닫혀진 입의 흔적을 지우며 결 고운 입자로 흘러갔다. 상처가 까맣게 맨드라미 씨앗으로 익어갈 무렵.

 





# 살고 싶어서 울고 환장하게 죽고 싶어서 울고,, 상처에 눈물처럼 고인 물은 언제 마를 것인가. 그 눈물 마르기도 전에 다른 상처 때문에 다시 물이 고이고,, 어쩔 것인가. 그 많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고 싶은 걸,, 다시 살고 싶어 운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낯설지 마라 - 문동만  (0) 2016.07.24
꽃 피는 날은 떠나지 마라 - 이기철  (0) 2016.07.24
라면 먹는 저녁 - 이상국  (0) 2016.07.17
식물의 인간성 - 김언  (0) 2016.07.10
아름다운 수작 - 배한봉  (0) 201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