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별과의 일박 - 이성목

마루안 2016. 4. 17. 23:37



별과의 일박 - 이성목

 


너를 사랑하는 날은 몸이 아프다
너는 올 수 없고 아픈 몸으로 나는 가지 못한다
사랑하면서 이 밝은 세상에서는 마주 서지 못하고
우리는 왜 캄캄한 어둠 속에서만 서로를 인정해야 했는가
지친 눈빛으로만 아득하게 바라보고 있어야 했는가
바라보다가 죽어도 좋겠다고 너를
바라보다가 죽어도 좋겠다고 나는
한숨도 못 자고 유리 없는 창문을 열었다가
닫았다 우리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어디선가 별이 울음소리를 내며 흘러갔고
어디선가 꽃이 앓는 소리를 내며 돌아왔다
그건 언제였던가
어깨 위로 비가 내리고 빗방울 가슴치며 너를 부르던 날
그때 끝이 났던가 끝나지는 않았던가
울지 말자 사랑이 남아 있는 동안은
누구나 마음이 아프다고
외로운 사람들이 일어나 내 가슴에 등꽃을 켜준다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 별빛을 꺼준다



*시집, 남자를 주겠다, 모아드림

 

 





 

남자를 주겠다 - 이성목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가슴에 칼금이라도 그어 보여줘야 하는가
말하지는 못했지만 나도 너만큼은 간절했었다고
시도 때도 없이 불끈불끈 일어서던 그건
주먹도 아니고 분노가 아니고
더더욱 혁명도 반란도 아니고
이것이었다고
덜렁거리는 치욕마저 벗어 보여야 하는가
살아 있어서 미안하다
죽음의 시대에도 내 욕정은 죽지 못했다
그러니 용서하라고 용서해 달라고
아아 아찔하게 나는 그만 너에게 주어야하는가
꾸물꾸물 일어서는 걸 줘야 하는가
다 주고 다시 한번 주저앉아야 하는가
패배도 항복도 아닌 체
변절도 도망도 아닌 체
시끌벅적하던 시대를 덩달아 덜렁거리며 왔다
두려워 사타구니에 대가리 쳐박고 왔다
그랬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무슨 주접이 필요한가
한창 몸이 다는 너에게 주겠다
남자를 주겠다
아직도 살아있다고 불끈거리는 이것
끝내 죽지 않으려는 이것
덜렁거리는 이것
마저 주겠다
진정한 절망이
사타구니에 추욱 늘어져 매달리기 전에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무 긴 이별 - 강연호  (0) 2016.04.18
동백, 보이지 않는 - 김윤배  (0) 2016.04.17
초라한 유서 - 배정원  (0) 2016.04.10
환멸을 찾아서 5 - 유하   (0) 2016.04.10
사당역 레일아트 - 강인한  (0) 2016.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