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바닷가 여인숙 - 최장락

마루안 2016. 3. 2. 00:03



바닷가 여인숙 - 최장락



낡은 철대문으로 소금기 절은 바람이 들어왔다.
마당의 빨래들이
어스름한 여름 저녁 만선 깃발처럼 펄럭이고,
어장에서 돌아온 턱수염 까칠한 사내는
막걸리 냄새 풍기며 수돗가에 앉아
하루의 일상을 씻어내고 있었다.
한때 마도로스를 꿈꾸었던 그는

남의 어장에서 삶의 풀칠을 하고 있었다.
여인숙은 

더 이상 갈 곳 없는 종착점이라고
술자리에서 말하던 사내는
건너방 늙은 창부의 품에서 자주 잠들었다.
간간이 방문 틈으로
남녀의 소근거리는 목소리가
마당을 가로질러 선명하게
들리는 밤엔 어김없이 비가 왔다.

또 다른 방에는

술집 나가는 젊은 여자가

세상을 향해 잦은 기침을 해댔다.

마지막으로 흘러오기엔

너무나 아까운 나이의 그녀가

방문 열고 빗소리 장단에 노래를 부를 때면

여인숙은 작은 간판의 불빛만 남고

멍든 파도소리와 빗소리에 묻혀

바다로 둥둥 떠내려가

또 하나의 섬이 되었다.



*시집, 와이키키 브라더스, 천년의시작

 

 






버스 정류장 - 최장락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사람들은 모두
버스가 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서 있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들은 타고 갈 버스를
기다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모두 한 곳을 응시하며
버스를 기다린다.
가끔 반대 방향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는 헤어짐의 아픔 때문이거나
기다리는 버스가 없는지도 모른다.
저녁 빛 곱게 내려앉은 정류장 보도 위로
은행잎이 바람에 굴러 가듯이
버스를 따라 사람들도 우르르 몰려간다.
버스를 타고서야 차창 너머 텅 빈 정류장에
혼자 남아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
버스는 떠나고 정류장에 또 다른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 속에 언제나 버스와 상관없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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