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시시한 비망록 - 공광규

마루안 2016. 2. 23. 00:05



시시한 비망록 - 공광규



돈이 사랑을 이기는 거리에서
나의 순정은
여전히 걷어차이며 울었다


생활은 계속 나를 속였다
사랑 위해 담을 넘어본 적도 없는 나는
떳떳한 밥 위해 한 번도
서류철을 집어던지지 못했다


생계에 떠밀려
여전히 무딘 낚시대 메고
도심의 황금강에서
요리도 안되는 회한만
월척처럼 낚았다


자본의 침대에 누워
자존심의 팬티 반쯤 내리고
엉거주춤 몸 팔았다
항상 부족한 화대로
시골에 용돈 가끔 부치고
술값 두어 번 내고
새로 생긴 여자와 극장 가고
혼기 넘은 친구들이 관습과 의무에 밀려
조건으로 팔고 사는 결혼식에
열심히 축의금을 냈다


빵이냐 신념이냐 물어오는 친구와
소주 비우며 외로워했다
나를 떠난 여자 생각하다가
겨울나무로 서서 울기도 했다


지나고 나니 이런,
시시한 비망록이라니



*시집, 지독한 불륜, 실천문학사

 







한심하게 살아야겠다 - 공광규

 


얼굴 표정과 걸친 옷이 제각각인
논산 영주사 수백 나한
언제 무너져 덮칠지 모르는 바위 벼랑에 앉아
편안하게 햇볕 쬐고 있다
새 소리 벌레 소리 잡아먹는
스피커 염불 소리에 아랑곳 않고
지저분한 정화수 탓하지 않고
들쥐가 과일 파먹어도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는다
다람쥐가 몸뚱이 타고 다녀도 아랑곳 않고
산새가 머리 위에 똥을 갈겨도 그냥 웃는다
초파일 연등에 매달린 이름들
세파처럼 펄럭여도 가여워 않고
시주돈 많든 적든 상관 않는다
잿밥에 관심이 더한 스님도 꾸짖지 않는다
불륜 남녀가 놀러와 합장해도 혼내지 않고
아이들 돌팔매에 고꾸라져도
누가 와서 제자리에 앉혀줄 때까지
그 자세 그 모습이다
바람이 휙 지나다
하얀 산꽃잎 머리 위로 흩뿌리면
그것이 한 줌 바람인 줄만 알고...


들짐승과 날새
흘러가는 구름과 바람결 속에
화도 안 내고 칭찬도 안하는
참 한심한 수백 나한들


나도 이 바람 속에서
한심하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