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오십 - 성선경

마루안 2016. 3. 7. 10:39



오십 - 성선경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둥글어진다는 것
늙음이 넓음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온몸을 둥글게 둥글게 만다는 뜻
햇살이 잘 닦은 숟가락같이 빛나는 정오는
이제 절반을 지났다는 뜻도 되지만
아직 절반이 남았다는 말도 되지
나는 방금 전 오전이었고
나는 지금 금방 오후에 닿았지
어제의 꽃은 씨방을 키우는 중이고
어제의 나무는 막 붉게 물드는 중이지
천명(天命)을 안다는 지천명
아주 둥글어진 해
늙는다는 것은 둥글어진다는 뜻
오후가 나의 넉넉함과 이어지지 않아도
온몸을 둥글게 둥글게 만다는 뜻
햇살이 기울어 그림자가 동쪽으로 서는 시간
이제 절반을 지났다는 뜻도 되지만
아직 절반이 남았다는 말도 되지
씨방 속에 또 싹이 나고
단풍 속에 물관이 선명하지
나는 방금 전 오전이었고
나는 지금 금방 오후에 닿았지



*시집, 봄, 풋가지行, 천년의시작








민들레 민들레 - 성선경



내가 그 나이에
벌써 사랑을 알았다는 것은 오해다.
아니다 그게 사랑이다
그게 그렇게 보였다면 그 계절의 탓
그날의 날씨와 바람의 탓
구름과 햇살과 연민의 탓
내가 그때 벌써
네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오해다.
아니다 네가 그랬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아직 봄날이었고
세상의 모든 씨눈들이 눈뜰 때였고
모든 꽃들이 봉우리를 맺을 때였다고
나는 아직이라는 말을 사랑하지 않지만
아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생애가 온통 봄날이라고 말하는 건 오해다.
아주 짧은 옷음 한 번을 위해
근심으로 키워 온 내 뿌리는 못 봤지?
내 몸에 속속 배인 쓴맛은 못 봤지?


바람이 향기를 실어 자주 옷깃을 건드렸지만
내 생애는 한순간에 다 지나갔었다.
내 생애를 아름답다고 말하는 건 정말 오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