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등뼈 기진한 밤 - 황학주

마루안 2016. 2. 18. 00:29



등뼈 기진한 밤 - 황학주



쏘옥 불들이 꺼지고 내 등뼈 기진한 밤에
골목 안 나뭇가지를 너는 스치는 것 같고
아직도 옷궤짝 속에서 상처를 꺼내 입는 것 같다
발을 더듬어 너의 눈물가에 닿는 밤에
오래 떨어지는 한숨 속에
나는 눈알도 무겁고 귀도 무겁게 서 있다
갯벌에 이마를 찍으며 조개를 캐던
너를 원했다 하나
네 환부가 냉장고처럼 열리는 것을
밀려나면서 나는 보기만 했다
여관 숙박부에 빨리 쓴 채 말라 버린 사랑같이
너의 입술을 놓친 정류장에서 급히 잃은 세상이 있네
손등을 누르면 흔한 눈물이 보이던 눈
거기 과속 경운기에 깔린 잠을 눌러 두고
가시가 굳어가고 있는 여름산에 들어간 너의 삶
살아볼수록 하수구 같은 가슴이 막히고
이해되지 않는 삶이 나를 깨우고
나의 외로움은 살펴둔 너의 골목에 엎질러진다
살아 생전의 땀들이 손자국을 남기는 등뼈
등뼈 구부러질 무렵
삶의 멀미가 멀어질 것인가
문득, 자전거를 피하여 어두운 벽에 붙을 때
너의 아버지가 휙 지나간다. 아.



*시집, 갈 수 없는 쓸쓸함, 미학사








목공소 부근 - 황학주



그믐치 속에 많은 삶이 철둑을 건너가는
여기 어둡다 오진 눈물이 깡통처럼 구르고
못쓰게 버린 연장 같은 시력 속에
한 번 보자고도 못한 사람이 보인다.
만나러 갈 수 없을 것 같은 쓸쓸함.
바람이 홀쭉한 셋방들을 거쳐가고
내동 얼굴 나온 적 없는 입시생이
한 발자국 옆방에서 내다보는 기척,
느지감치 빚진 제 아버지 보고 자야 하겠지.
무턱대고 내 가슴뼈에 대고 울었으나
홀로 갔으니 막내 아우는 홀로 돌아오겠다.
그의 개인적인 눈물은
내게도 희고 아름다웠다.
결혼식장에서 둘 다 입가에 환심을 넘실대던
신혼의 골목 끝집에는 내일 문짝을 보내 줘야 한다.
새댁이 두 가닥 다리를 열심히 붙이고 걷는데
삶은 눈발 속에 빨개지는 눈알 같다.
내 단단히 올지도 모를 창자의 병 생각을 할 때
슬픔의 뒷꼭지까지 봐버렸을지도 모를
어느 늙은 삶이 가래를 끊지 못한다.
눈발이 이 부근 술집까지 동네사람들의 친구를 끌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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