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결핍 - 김왕노

마루안 2016. 2. 16. 09:29



결핍 - 김왕노



생각해 보니
저 언덕을 넘어 여름이 내게 오지 않았다
북방여치 울어야 할 늦여름의 시기인데
남루한 봄의 슬픔만 아직 내게 죽치고 있다.
밤이 오고
한 초롱 내 목숨에 심지를 담가 등불을 켜야 하는데
불빛을 따라 어린 게 같은 아들딸이 귀가해야 하는데
지축이 흔들려 내게 백야가 왔나
아직도 내게 떠도는 행려병자 같은 봄 햇살
생각해보니
저 거리를 지나 어떤 그리움도 내게 오지 않았다
마흔도 훌쩍 넘었는데
벌써 심은 꽃이 시들어갔는데
누가 거리에서 혁명을 외치다 쓰러져가며 부른 아픈 노래인가
몇 년간 낡은 노래만 내게 와 살고 있다
문도 며칠째 따두었는데 와야 할 것은 오지 않고
먼지만 쌓여가는데
내게 와 떠나지 않는 한 시대의 어지럼증
생각해 보니
저 언덕을 넘어 어떤 종소리도 내게 울려오지 않았다
어떤 맑은 별도 내게 흘러오지 않았다



*시집, 말달리자 아버지, 천년의시작








경계를 넘어서다 - 김왕노



아차 엿본다는 것이 그만 한 발 한 발 들어서버린 거다.
이 금기의 집에
난 잡힌 한 마리 짐승이거나 덫에 치인 발목


경계를 넘어서 아팠던 마음이 아무니
고통이 찾아든다.


차라리 죽음을 받아들이고
저 멀리 던져버리고 싶은 통증


가슴에 무엇이 들어 있나
속 시원히 헤쳐보라던 할머니의 말씀에 수긍이 가는


죽으면 두통이 떠나주리라던
동네 어른의 말씀이 아물거리는


그러나 통증이 잠잠해지면 이 금기의 집을
다시 환한 내 고통으로 채워보기도 하리
텃밭에 꽃 피라고 미친 듯 눈물도 뿌려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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