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홍옥을 같이 먹고 싶은 사람은 - 최서림

마루안 2016. 2. 10. 00:51



홍옥을 같이 먹고 싶은 사람은 - 서림



대구의 하늘이 내 눈 속에서
홍옥으로 익어가고 있다.


나나 무스꾸리 슬픈 노래를 듣고 있다.
에게海, 햇살 찰랑이는 가을 바다에서 번져나오는
그 깊고 맑은 소리


이 저녁, 나나 무스꾸리를 같이 듣고 싶은 사람은
잡풀 시들어가는 내 마음의 하늘 저쪽
워싱턴에 가 있다.


에게海 푸른 소리를 엿듣고 있는 별빛 아래서
그녀의 깊은 하늘 아래서도
능금이 익어가고 있을 게다.


사. 랑. 한. 다
토해내지 못한 늑골 속 불덩이가
단단하게 속심으로 박혀 있는


홍옥을 같이 먹고 싶은 사람은
마음으로 난 사잇길로도 돌아오지 않아야 할
지구 뒷동네에 살고 있다.



*시집,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 문학동네








물컹거리는 향수(鄕愁) - 서림



그녀는 어느 하늘 아래
밥 먹고 똥 누고 있을까.


그리움 하나로도
한 이십 년
마음으로 뼈로 삭여봐라.
오래 못 본 타인도 문득
마누라 같은 생각이 든다.
밥상이나 TV 앞에 늘
같이 앉은 느낌이 든다.


그만 하면 이제
사랑도 향수로 둔갑하리라.
산업화로 카바레 주유소로
고향 잃어버린 나에게 그녀는
내 돌아가 안길 옛마을이다.
이십 년 전의 햇살이 가을바람이 저녁노을이
그때 그 단발머리를 지금도 여전히.....


서로 엇갈리며 번개같이 피하던
스무 살 눈빛,
속 타는 냄새가 그 속에서
어른거렸다.
손목 한번 못 잡아봤다.
홍옥 둥글게 익어가는 날,
홍옥 하나 따주며
흠도 티도 없는
홍옥 같은 마음 남기고 떠나버렸다.
그후 이십 년
내 속에서 똥도 안 누는 여자였다.


만날 수 있으리란 생각 하나로도
내 염통이 죽는 날까지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그녀,
지금 어디에쯤 굵어진 허리로
양변기에 걸터 앉아
내 마누라처럼
똥 누고 있을까.
그리움 물컹, 거리는....






#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은 서림이라는 필명으로 냈지만 이곳엔 바꾼 이름인 최서림으로 올린다. 물론 최서림도 필명이다. 서림 시인의 본명은 최승호다. 그래서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서는 최승호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