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눈치의 온도 - 이병률

마루안 2016. 1. 12. 00:46



눈치의 온도 - 이병률



서로 좋아하는 저이들 사이에는
눈알 속에 소금기가 끼어 있는가 보다
그래서 저리도 저릿저릿하다는 듯 뛰고 있나 보다


서로서로 좋아하는 저네들 사이에는
풀 같은 것이 자라고 있어
그래서 저토록 터지도록 부비며 깎고 있나 보다


어질고 착하게 꽃들을 쓰다듬고
앙큼하게 뒷산도 오르며
저리도 좋아라 어깨 부딪히며
조금씩 조금씩 산을 훑어내리나 보다


그리하여 모든 이야기를 0에서 시작하고
사랑의 모든 시제는 미지의 것을 사용하나 보다


손으로 자신을 핥아서 스스로를 당부하고
그 손을 뻗어 여름 잎이 돋게 하는 그것은
애쓰는 일이 아니라
불빛이 닿아서 되는 일


사람이 사람을 저리도 좋아하는 것은
오장육부의 빈 골을 채우는 일 같다
손으로 닿아서 통하는 것도 아닌
연기와 연기가 서로 하는 일


혼자서는 헐렁해서
자꾸 미끄러지는 비탈
도저히 그 막막을 어쩌지 못해
흐릿흐릿 구겨진 그것을 자꾸 펴려고 하나 보다



*시집, 눈사람 여관, 문학과지성








내 손목이 슬프다고 말한다 - 이병률



내 손목이 슬프다고 말을 한다
존재에 대한 말 같았다
말의 감정은 과거로부터 와서 단단해지려니
나는 단단한 내 손목이 슬프지 않다고 대답한다


잠들지 못하는 밤인데도 비를 셀 수 없어 미안한 밤이면
매달려 있으려는 낙과의 처지가 되듯
힘을 쓰려는 것은 심줄을 발기시키고 그것은 곧 쇠락한다


찬바람에 몸을 묶고 찾아오는 불안을 피할 수 없어서
교차로에는 사고처럼 슬픔이 고인다


창가에 대고 어제 슬픔을 다 써버렸다고 말했다
슬픔의 일부로 슬픔의 전부는 가려진다고 말해버렸다


저녁에 만난 애인들은
내 뼈가 여전히 이상한 방향으로 검어지며 건조해져간다고 했다


손목이 문제였다
귀를 막을 때도 무엇을 빌 때도 짝이 맞지 않았다


손목 군데군데 손상된 혈관을 키우느라 밤을 지새울 예정이다
저 바람은 슬픔을 매수하는 임무로 고단할 것이므로
나는 이제 내 손목에게 슬픔을 멈추어도 된다고 말한다





# 그래 사랑에서 너무 눈치가 많으면 안된다. 먼저 들이대고 볼 일이다. 내가 좋으면 상대가 자꾸 멀어지고 나는 별론데 상대에서 좋다고 다가온다. 내게도 사랑할 때 손목이 문제였던가. 귀를 막을 때도 사랑을 빌 때도 언제나 짝이 맞지 않았으니,,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