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늙음에 관하여 - 이선영

마루안 2016. 1. 10. 23:58



늙음에 관하여 - 이선영



눈에 보이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따라간다


육체가 먼저 가자고 하는 것이다


늙은 그는 내어줄 것 다 내어줘 뼈만 남았고
늙은 그녀는 힘에 부치는 몸뚱이를 어쩌지 못해 끙뜽댄다
그의 육체는 늙어서 그에겐 늘 모자랐고
그녀의 육체는 늙어서 그녀를 넘쳐났다


육체가 가자고 하는 대로 따라나서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늙었다,
그녀는 늙었다,
는 것을 모두가 안다


육체가 망가져가고 있다는 것을
그와 그녀는 더이상 쥐도 새도 모르게, 감쪽같이, 숨기지 못한다


육체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육체는 지쳐서 이제 사납게 군다


늙을 것이다


어떻게?


아직은 젊은 육체에 조심스럽게 묻는다



*시집, 일찍 늙으매 꽃꿈, 창작과비평








조로(早老)의 화몽(花夢) - 이선영



"엇젼지 눈물이 흘늠니다그려. 당신들을 대하매 내가 꼿을 피엿든 때를 회억(回億)하여지는구려"
망양초(望洋草)는 백장미와 홍장미를 갓가히 안치고 그가 졂엇슬 때에 담홍색의 꼿을 피엿슬 때 한 옛젹의 니약이를 시작하려 한다.     - 김탄실 수필 <朝露의 花夢>에서



미안하지만, 백장미 홍장미여
나는 날마다 새로 피는 꽃이다
나는 지는 꽃도 아니요
떨어지는 꽃잎도 모른다
누군가 시든 꽃잎을 허옇게 빼물며 나에게 물었다
날마다 다른 빛깔 때론 다른 모양의 꽃잎을 다는 게 귀찮지 않으냐고
그저 웃엇을 뿐이지만
나에겐 그 하루동안이면 끝자락이 처지는 한철이다
하루가 채 가기도 전에 나는 벌써 나를 새로 그리고 싶어진다
나는 무언가 늘 모자라고 어딘가 늘 고칠 데가 있는 것이다
알아챘는가, 나는 날이 새면 종이에 다시 그려지는 종이꽃이다
나는 늙는 게 싫어서 종이에게 내 영혼을 팔았다
나는 종이 위에서 날마다 조금씩 색깔과 모양을 바꾸며
언제까지나 젊고 새로울 것이다
나는 늙지 않고 진행중인, 젊음을 향해 수정중인 꽃이다
백장미 홍장미여,
담홍의 추억도 나는 종이에다 말리련다
멀찌가니 저쯤에 날아가지 않는 남호접 한 마리를 그려 넣어다오





# 시 잘 쓰는 시인이다. 朝露의 花夢 早老花夢으로 비틀어 나이 듦에 관한 쓸쓸함을 기가 막히게 표현하고 있다. 朝露든 早老든 간에 늙은 사람에게는 같은 뜻으로 읽혀도 무방하리라. 그럼 나잇살, 주름살 다 무시하고 늙었다는 경계를 긋는 지점은 어디일까. 혼자 서서 바지를 갈아 입지 못하면 확실히 늙은 거란다. 찬바람 스치는 마른 가지 사이로 곧 봄소식이 기미를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