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회복기 - 이창숙

마루안 2016. 1. 13. 01:05



회복기 - 이창숙



어느 날 뱀처럼 스르르 저쪽 세상으로
떠날지도 몰라 누워 바닥이 좋다는 건,
그토록 바닥이 눈물나게 좋다는 건, 병에
대한 두려움에 눈물짓지 않는다는 거야
눈물이 나온다는 건, 살아가는 걸 걱정한다는
거야 거울 속의 흰 머리카락을 낯가림 없이 세상에
드러내며 내뱉는 진실 된 말이야 진짜 괜찮았어
바닥이란 거


바닥이 그렇게 너그러운 줄 몰랐어 등짝을 들먹이며
바닥에게 저항했다면 바닥은 아마 내 몸을
갉아 먹으려 했을지도 몰라 등짝에 붙어서
뼈와 살과 정신을 세상에서 고립시키려
했을지도 몰라


누워 바닥이 좋다는 건, 그토록 바닥이
좋다는 건 슬픔 없이 어느 날
뱀처럼 스르르 저쪽 세상으로
건너는 것일지도 몰라



*시집, 바람든 무 내 마음에게, 눈빛








화장(花葬)하는 아침 - 이창숙



눈이 왔다 부시게 하얗다 아침이 흰 꽃으로 하얗게 운다 나도 덩달아 하얀 눈물이다 바람은 밤새 무엇을 버리려고 감나무의 뼈 속과 내 잠을 흔들어 놓았는지 누덕누덕 기운 길은 죽음으로 눕고 그 위에 가벼워진 영혼이 흰 이불을 덮었다 막막한 길, 죽음 깊숙이 길은 나 있다 운다 반뼘쯤 묻힌 어제가 울고 있다


죽음이 휘몰아친 뒤, 오가는 이 없이 조문하는 새들의 발자국만 눈 위에 찍힌다 눈의 알갱이들을 꿰어 상복을 지을까 나의 죄를 위로받기 위해 한 시간만이라도 새의 발자국 옆에 맨발이 되어 볼까


하얗다 아침은 수억만 송이 흰 꽃으로 울고 있다 세상 너머 돌아오는 내일은 울부짖지 않는다 뒤돌아보지 않는 것들에게 눈을 맞추고 고이 잠드는 아침, 내 질기고 시린 삶도 흰 꽃 속에 함께 묻기로 한다





# 슬픔이 뚝뚝 묻어나는 시편들이다. 내 어머니가 물려 준 태생적인 정서는 주변의 슬픔을 감지하는 것이었다. 어릴 적 무당의 징소리가 무서우면서 끌림을 주었던 것도 내 몸 어딘가에 작두 타는 무당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시를 읽으면서 왜 슬픔의 유전이 떠올랐을까. 세상의 모든 것은 슬퍼야 한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가요도, 연속극도, 무당의 삶도,, 내 삶의 에너지는 슬픔을 먹고 자란 만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