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호스피스 병동에서 - 김만수

마루안 2015. 11. 3. 08:43



호스피스 병동에서 - 김만수
-붉은 반티



그녀의 몸속으로 흘러드는
나직한 복음을 본다
창틈으로 노을 새어들어
그녀의 얼굴 반쪽을 붉게 기어오르는 저녁
평생 먼지와 욕이 흘러들어 새나오던 몸
더 이상 덜컹거리지 않는다
비로소 하얗고 깨끗한 방 안에서
착하게 자유롭다


젖은 땅을 짚고 쓸어안고
헤엄쳐 건너던 그곳에는
시궁쥐가 눈 굴리는 저녁이 오고
나직이 불 내 걸던 그녀가
휘익 뒤돌아보는 시장 어귀에
세상의 한자락을 담아내던
붉은 고무 반티 하나
어둠 속 달랑 걸려 있다



*시집, 메아리 학교, 서정시학








어떤 슬픔 - 김만수



사내는 길게 울었고 끝내
천정의 막은 내려오지 않았다
관객들은 한움큼씩
마감되지 않은 슬픔을 손등에 묻혀 돌아가고
스텝들이 슬픔의 흔적들을 치우고
벗겨내는 동안
연출된 슬픔은 마룻바닥 위에 오래 살아 있었다
가을의 중심을 적시던 그 울음소리 아직도
이 도시에 혼재되어 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그 사내와 마주치는데
그가 끌고 가는 무대는 가끔
맥도날드에 걸처져 있기도 하고
시계탑 아래에 찌르러져 있기도 하는데
그래도 무대를 품고 가는 그는
잘 포장된 슬픔들을
탄환처럼 가슴에 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빌딩 난간에 걸린 그를 본다
그가 연습 중에 버린 슬픔 한쪽이
통유리창에 박혀 있다





# 김만수 시인은 1955년 경북 포항 출생으로 1987년 <실천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소리내기>, <햇빛은 굴절되어도 따뜻하다 >. <오래 휘어진 기억>. <종이 눈썹>. <산내통신>. <메아리 학교>. <바닷가 부족들> 등이 있다. 오랜 기간 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