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도반(道伴) - 이성선

마루안 2015. 10. 7. 23:06



도반(道伴) - 이성선

 


벽에 걸어놓은 배낭을 보면
소나무 위에 걸린 구름을 보는 것 같다


배낭을 곁에 두고 살면
삶의 길이 새의 길처럼 가벼워진다


지게 지고 가는 이의 모습이 멀리
노울 진 석양으로 하늘 속에 무거워도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혹은 걸어가는
저 삶이 진짜 아름다움인 줄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중심 저쪽 멀리 걷는 누구도
큰 구도 안에서 모두 나의 동행자라는 것
그가 또 다른 나의 도반이라는 것을
이렇게 늦게 알다니


배낭 질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지금



*시집,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세계사








설악을 가며 - 이성선



수렴동 대피소 구석에 꼬부려 잠을 자다가
밤중에 깨어보니 내가 아무것도 덮지 않았구나
걷어찬 홑이불처럼 물소리가 발치에 널려 있다
그걸 끌어당겨 덮고 더 자다가 선잠에 일어난다
먼저 깬 산봉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쫓겨서
옷자락 하얀 안개가 나무 사이로 달아난다
그 모습이 꼭 가사자락 날리며
부지런히 산길을 가는 스님 같다
흔적 없는 삶은 저렇게 소리가 없다
산봉들은 일찍 하늘로 올라가 대화를 나누고
아직 거기 오르지 못한 길 따라 내 발이 든다
길 옆 얼굴 작은 풀꽃에 붙었던 이슬들
내 발자국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물소리가 갑자기 귓속으로 길을 내어 들어오고
하늘에 매달렸던 산들이
내 눈 안으로 후두둑 떨어진다
오르지 못한 길 하나가 나를 품고 산으로 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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