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잘 있거라, 내 여름의 강 - 이면우

마루안 2015. 8. 28. 23:03

 


잘 있거라, 내 여름의 강 - 이면우



내 여름의 자본은
두 장 반바지, 티셔츠 하나
그리고 작업 중 척 늘어져
거추장스런 반 근 불알의 자존
나는 이 모든 장치를 힘껏 강에 던졌다
어느덧 가을이다 나도 한때는 당당히
이 모두를 담보로 세끼니 밥을 샀다
강에는 껍질 벗은 날개의 묵은 집이 떠내려온다
저물녘 강변 자갈들은 발에 밟히며 구슬피 운다
지금은 청춘을 온전히 낭비한 사내들이
묵묵히 떠나야 하는 때다.

 
잘 있거라, 내 여름의 강
뿔뿔이 달아난 매미소리처럼
내 이제 아무런 할 말이 없다
젖은 머리칼의 여자 곁에서 한 때
가슴 두근대며 얻던 깊은 잠도 아득히 멀어져갔다
강변의 나지막한 텐트가 저 혼자 펄럭인다
여울목을 오르는 작은 물고기들의 배가
지는 햇빛에 아픔처럼 번뜩인다
저 멀리 굽은 둑길 따라
아이들은 노래 부르며 다가오고 그때도
강은 내게 등 보이며 소리없이 흘러갔다.

 
나도 일찍이 황금빛 가을을 꿈꾸었으니
느닷없이 다가올 저녁은 준비하지 못했다
그 오랜 망설임, 글썽임 끝에
나의 여름은 새들의 날갯짓처럼 희미해지고
사는 일 어김없이 가을은 와
지금은 지상의 단 한 번뿐인 여름을
세끼니 밥과 바꾼
등 굽은 사내들 어디론가 떠나는 때
나는 거기 어디쯤 뒤돌아 서서 강의 등에
또박또박 새겨 넣는 침묵의 말

 
잘 있어라, 내 여름의 강
내게 허락된 여름은 그토록 긴 아픔이었구나
아니, 가슴 뛰는 은밀한 기쁨이었구나.



*시집,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북갤럽








벚꽃 터널 신탄진 - 이면우



이 벚꽃 터널 빠져나가면
그대 어느덧 반백은 되어 있으리
문득 뒤돌아보는 거기쯤
새로 막 태어난대도 좋으리
감아도 부신 눈 속 꽃잎은 눈발로 분분하고
한 번 떠나온 저곳,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음
세상 겨울을 거듭 지난다 해도 끝내 여기 이 자리
이렇게 뒤돌아볼 뿐이라니.... 바로 그때
그대는 마음의 문을 막 통과했으니
괜히 큰 소리로 아이도 불러보고
어깨 부딪친 이와 눈인사도 나누는 때
긴 겨울 뒤 짧은 봄은
끝내 여름의 무성함에 잇대진 길
거기 흰 꽃잎들 떨어져 늦은 깨달음처럼
오래오래 뒤채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