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구두를 위한 삼단논법 - 윤성학

마루안 2015. 8. 28. 22:59



두를 위한 삼단논법 - 윤성학



갈비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다가
신발 담당과 시비가 붙었다
내 신발을 못 찾기에 내가 내 신발을 찾았고
내가 내 신발을 신으려는데
그가 내 신발이 내 신발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내 신발의 주인을 분명히 기억한다고 했다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것보다
누군가 내가 나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
더 참에 가까운 명제였다니
그러므로 나는 쉽게 말하지 못한다
이 구두의 이 주름이 왜 나인지
말하지 못한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꽃잎 속의 수많은 꽃들을 볼 때,
강변북로를 달리다가
강으로 지는 해를 너무 빨리 지나치는 것이 두려워
공연히 브레이크 위에 발을 얹을 때,
누군가의 안으로 들어서며 그의 문지방을 넘어설 때,
손닿지 않는 곳에 놓인 것을 잡고 싶어
자꾸만 발끝으로 서던 때,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나를 떠밀고 가야 했을 때
그때마다 구두에 잡힌 이 주름이
나인지 아닌지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시집, 당랑권 전성시대, 창작과비평

 






 

마중물 - 윤성학

 
 
참 어이없기도 해라
마중물, 마중물이라니요


마중물 : 펌프로 물을 퍼올릴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먼저 윗구멍에 붓는 물
(문학박사 이기문 감수, 새국어사전 제4판, 두산동아)


물 한 바가지 부어서
열 길 물 속
한 길 당신 속까지 마중갔다가
함께 뒤섞이는 거래요
올라온 물과 섞이면
마중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텐데
그 한 바가지의 안타까움에까지
이름을 붙여주어야 했나요
철렁하기도 해라
참 어이없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