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비 내리는 오후 세 시 - 박제영

마루안 2015. 7. 3. 23:20



비 내리는 오후 세 시 - 박제영



그리움이란
마음 한 켠이 새고 있다는 것이니
빗속에 누군가 그립다면
마음 한 둑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니


비가 내린다, 그대 부디, 조심하기를
심하게 젖으면, 젖어들면, 허물어지는 법이니


비 내리는 오후 세 시
마침내 무너진 당신, 견인되고 있는 당신


한때는 '나'이기도 했던 당신
떠나보낸 줄 알았는데


비가 내리는 오후 세 시
나를 견인하고 있는 당신

 


*박제영 시집, 뜻밖에, 애지

 






 

남탕 - 박제영

 


세상의 모든, 아비들이 실은
꼭꼭 숨겼던, 남근들이 죄다
저리도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뻣뻣하게 거드름 피운 것도 생각해보면
가늘고 무른 속이, 흔들리는 제 뿌리가
드러날까 두려웠던 것


세상의 아비들은 다만
살기 위해 딱딱해져야 했던
무골(無骨)의 가계(家系)를 숨기고 싶은 것이다

 




# 비가 내리던 어느날 옥탑방에서였다. 우리 그만 만나자라고 헤어진 사람이 있다. 그러지 뭐 하면서 이별 통고를 순순히 받아들이기에도, 그렇다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며 매달릴 만큼 좋은 것도 아닌 사이였다. 잊은 줄 알았는데 빗속에서 모락모락 떠오르는 사람, 때론 비가 미련을 씻어내는 것이 아니라 불륜같은 추억을 쌓아 올리기도 하는가 보다. 비 내리는 풍경 속에 박혀있는 달고 진한 커피향 때문일까. 서툴렀던 헤어짐 뒤로 문득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른다. 우리 비도 오는데 다시 한번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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