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꽃은 언제 피는가 - 김종해

마루안 2015. 5. 17. 20:45



꽃은 언제 피는가 - 김종해



사랑하는 이의 무늬와 꿈이
물방울 속에 갇혀 있다가
이승의 유리문을 밀고 나오는,
그 천기의 순간
이순의 나이에 비로소
꽃피는 순간을 목도하였다
판독하지 못한 담론과 사람들
틈새에 끼어 있는,
하늘이 조금 열린
새벽 3시와 4시 사이
무심코 하늘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



*시집, 봄꿈을 꾸며, 문학세계사








바늘귀 - 김종해



틑어진 단추를 달기 위해
고희를 넘긴 아내가
바늘귀에 실을 꿰어 달라고 한다
예닐곱 살 때 어머니의 바늘귀에
직방으로 꿰었던 그 실이
오늘 내 손끝을 달군다
어머니의 푸른 하늘을 꿰차며 날던
그 방패연과 실꾸리
아내가 내민 바늘귀에 실을 꿴다
돋보기를 쓰고도 바늘 구멍을 찾지 못해
나는 허둥댄다
갈 길을 찾지 못해
바늘귀 바깥에서 헛짚는 시간
바늘귀 하나 꿰지 못하는 나는
무엇을 잃고 여기까지 온 것일까
바늘귀가 내 앞에 절벽처럼 서 있다






# 고희를 넘긴 시인이 시집을 내며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난 친구들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시집 머리에 이런 글을 남겼다.


한평생 살아온 길 위에서 뒤돌아보면
거기 보이는 모든 삶이 봄꿈이다. 외롭고 슬프고 어두운 날의 기도마저도
더 오래 내 것이 된 길 위에서
살아있는 자에게 오늘만이 봄날이라면
사람 살아가는 한평생이 봄날이다
친구여, 헛된 봄꿈을 꾸는 나는
삶이 우리에게 한번쯤 허락하는 봄날을 믿는다
친구여, 길 위에서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