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의문사한 봄날은 떠돌고 - 김왕노

마루안 2015. 5. 17. 09:53



의문사한 봄날은 떠돌고 - 김왕노



혹독한 겨울이 떠나간 자리는 얼얼한데
밤새 누가 새고 있다 아득한 저 어둠 속으로
내 잠 위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 같은 것
젖어 눅눅한 내 잠
의문사한 봄날은 창 밖에서 떠돌고
살아간다는 것은 제 삶의 틈을 잠그거나 메우는 것이라
누군가 속삭여 주고 갔는데
누가 밤새 새고 있다
뒤돌아보면 나는 새는 일뿐이었다
어느새 울음 터뜨리다 내게서 새버린
자. 영. 숙 아련한 이름들
참죽나무 끝에 번지던 밥짓는 연기
잠궈도 잠궈도 헐거워지는 것이 생인가
밤새 누가 새고 있다
한밤의 꿈이 방울방울 새고 있다
의문사한 봄날이 창 밖에서 떠돌고
여기 저기서 새고 있다 아득한 저 어둠 속으로
다시 봄 부르는 한밤의 빗방울인 듯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 천년의시작








꽃피는 난간 - 김왕노



삶은 언제나 능소화꽃 끝까지 따라와도
결국 꽃 피지 못하는 눅눅한 난간이다
난간에 서면 생이 아찔해지고 너는 보이지 않는다
난간 모서리를 잡고 어디쯤 있을까 가늠하면
도시의 끝 쪽이 보이고 도시로 찾아드는 황혼
하루를 바다에서 탕진해 버리고
서둘러 공원 숲으로 내려앉는 황금새때
벌써 안식을 짜며 자라 오르는 잠
그리움은 더 먼 쪽을 보기 위해
난간 밖으로 몸을 내밀고


난간에 선 상심한 마음을 위로하려
스스로 길을 닦고 북소리처럼 다가오는 불빛
옛날 함께 밝히던 꽃등 같은 네 편지
행간 속에 피어 함께 사위어 가던 촛불 같은


무거운 영혼일수록 난간으로 나서기 쉽지 않다는 것
삐걱이는 바닥이 두려운데 아차 기우뚱하며
벼랑 아래로 추락해 가는 생
추락하다 떠나온 난간을 바라보면
언제 네가 왔다 울고 간 흔적인가
환한 꽃 한 송이


이제는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아! 저 꽃피는 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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