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 아득한 그리움의 거리 - 한기팔

마루안 2015. 2. 19. 21:20



그 아득한 그리움의 거리 - 한기팔
 

너와 나
너와 나
그렇게 생각했을 때
그 아득한 그리움의 거리
무슨 바람이 불다 갔을까


보이지 않는 발들이 밟고 간
나뭇잎들
어느 아침 햇빛이 놀다 갔을까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런 활법(活法)으로
둥그렇게 커져가는 하늘


일찍 숲을 찾아 날아가는
새의 뒷그림자 좇아
피 떨구듯
그 아득한 그리움의 거리
어느 하늘이 노을지다 갔을까

 


*시집, 바람의 초상, 시와시학

 







먼 바다 푸른 섬 하나 - 한기팔



먼 바다 푸른 섬 하나
아름다운 것은
그대 두고 간 하늘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눈물과 한숨으로 고개 숙인
먼 바다
새털 구름 배경을 이룬
섬 하나


뭐랄까
그대 마음 하나 옮겨 앉듯
거기 떠 있네


먼 바다 푸른 섬 하나
아름다운 것은
내가 건널 수 없는 수평선
끝끝내 닿지 못할
그리움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 한기팔 시인은 1937년 제주 서귀포 출생으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중퇴하고 1975년 시전문지인 심상에 시가 추천되어 등단했다. 제주도 서귀포에서도 가장 남쪽 바닷가에 자리한 중고등학교에서 한평생 미술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시를 써 온 사람이다. 시인의 시에는 바다, 바람, 별, 구름, 산 등 주변에 흔하게 널려있는 소재가 대부분이고 남쪽의 봄 소식을 가장 먼저 띄어 보내주듯 쉬운 시를 쓴다. 화가의 시각으로 바라 본 아름다운 시편들에서 시인이 참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임을 느낄 수 있다. 시집으로 <서귀포>, <불을 지피며>, <마라도>, <풀잎소리 서러운 날>, <바람의 초상>, <말과 침묵 사이>, <별의 방목> 등이 있다. 이렇게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아름다운 시를 쓰고 바람처럼 찾아오는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며 조금씩 늙어가는 것도 참 괜찮은 인생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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