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리막에서 그렇다 - 조숙

마루안 2015. 1. 23. 09:16



내리막에서 그렇다 - 조숙



슬픈 길이 있다


그곳에 도착하면
시간은 토막 나고
공간도 머나먼 곳으로 사라져서
부드러운 슬픔이 밀려들어 온다


공업탑 로터리에서
달동 사거리 내리막이 그렇다


울주군청 사거리에서
군부대쪽 내리막이 그렇다


그 길에 멈춰 서던
시간이 멈추는 열차에 올라타게 되어
인생이 나이가 결혼이 육신이
슬퍼진다


순간의 토막이
따뜻하고 환하게
덜컹거리고 어수룩하게


생활의 틈에 스며든다



*조숙 시집, 금니, 연두출판사








금니 - 조숙



내가 다니는 치과는 공업탑*에 있다
통증 느끼던
생니의 신경을 끊어내고
썩지 않을 것으로 채우는 중이다


곧 번쩍이는 금을 씌울 것이다


적군에게 걸리면 다 뽑힌다는 금니
번쩍거리는 금 씌우고
공업탑처럼 우뚝 솟아나
새로운 식량을 흡수할 것이다


무엇이든 걸리기만 하면
우걱우걱 씹어대던
숱한 이론과 희망과 관심


내 이발에서 이제 고통은 사라질 것이다


오래된 이론의 찌꺼기들까지
말끔히 스케일링 되었다
술에 취하면 가끔씩
헛된 희망 꿈꿀지도 모르지만
내가 죽어도 썩지 않고 남아있을 금니
몸에 심고 있는 것이다



*공업탑은 울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1967년에 세워졌다.





# 조숙 시인은 충남 조치원 출생으로 200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나왔다.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제4회 울산작가상을 수상했다. <금니>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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