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하나뿐인 별에서 - 이상국

마루안 2015. 1. 19. 01:52



하나뿐인 별에서 - 이상국



이 별은 너무 몸이 무겁다
특히 아메리카나 유럽 쪽으로 돌 때면
별은 망가질 듯 삐걱거린다
쓸데없이 가진 게 많아서 그렇다
지구라는 별은 원래 조금 삐뚜름하게 걸려 있는데
한쪽에만 자꾸 짐이 실리면 아주 기울어서
어느 날 중심을 잃고
어둠속으로 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미 무역센터 빌딩 같은 것도 그래서 무너지는 것이다
이 별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황폐한 땅들은 갈아엎고 땅콩을 심거나
한 만년 묵밭으로 쉬게 해야 하는데
그때까지 별이 견딜 수 있을지
오늘밤도 별은 물레방아처럼
삐거덕거리며 돌고 있다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창비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 이상국



감자를 묻고나서
삽등으로 구덩이를 다지면
뒷산이 꽝꽝 울리던 별


겨울은 해마다 닥나무 글거리에 몸을 다치며
짐승처럼 와서는
헛간이나 덕석가리 아래 자리를 잡았는데
천방 너머 개울은 물고기들 다친다고
두터운 얼음옷을 꺼내 입히고는
달빛 아래 먼길을 떠나고는 했다


어떤 날은 잠이 안 와
입김으로 봉창 유리를 닦고 내다보면
별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봄을 기다리던 마을의 어른들이
별똥이 되어 더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하늘에서는 다른 별도 반짝였지만
우리별처럼 부지런한 별도 없었다


그래도 소한만 지나면 벌써 거름지게 세워놓고
아버지는 별이 빨리 돌지 않는다며
가래를 돋워대고는 했는데


그런 날 새벽 여물 끓이는 아랫목에서
지게 작대기처럼 빳빳한 자지를 주물럭거리다 나가보면
마당에 눈이 가득했다


나는 그 별에서 소년으로 살았다





# 소년처럼 살고 싶었을까. 사슴의 눈으로 설악산 자락에 묻혀사는 시인의 맑은 심성이 묻어나는 시다. 너무 많이 가져 지구가 힘들다. 가능하면 적게 소유하고 가능하면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 새 거 큰 거 비싼 거 왜 그렇게 지구를 힘들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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