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하여 - 박두규
최백호 라는 중년의 가수가
낭만에 대하여 라는 노래를 부를 때면
나는 괜히 낭만주의가 생각나는 것이다
생떼 같은 목숨들이 죽어가는 시절에도
꽃이 피고, 별을 헤아릴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낭만주의의 승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더러는 술이 떡이 되어
나앙만에 대하여 라고 노래하는 순간
낭만주의는 실패한 인생들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곤 했다
번다한 세상살이에서 낭만은 해결책이 아니었겠지만
석가나 예수라 한들 길가의 나무 그늘에 앉아
노을을 보며 노래 한 소절 부르지 않았을 것인가
생각해 보면 낭만에 죄가 없듯
인생에 무슨 실패가 있을 것인가
숲을 나는 저 하얀 나비들 중에도
실패한 인생이 따로 있을 것인가
한 떼의 바람처럼
세상을 훑고 지나가는 것들이 있을 뿐이다
*박두규 시집, 숲에 들다, 애지
獨行(독행) - 박두규
혼자 산을 오르자니 이젠 두렵다
훌쩍 떠나 낯선 골짜기를 올라도
마음에 두었던 능선자락을 쉽게 만나곤 했는데
이젠 나이에 찌든 외로움이 버겁다
지금도 저 산이나 나는
변한 게 없다고 말하지만
그 사이로 늘 강 하나가 흘렀나 보다
억새꽃 흔들리는 길 따라 사람은 가고
그렇게 또 한 시절도 갔지만
헤아리기 힘든 이 걸음을 끌고
나는 어디까지 온 것일까
이제 누구를 만나야 하는 걸까
하지만 산은 지금도 늘 먼저 대답한다
이미 신록이 짙어졌건만 산은
그 틈새에 또 화사한 산벚꽃 피우고 있다
# 문예지에 발표할 때 만났던 시를 나중 시집에서 다시 읽을 때가 많다. 그런데 시집에서 만난 시가 성형수술을 하고 나타날 때가 있다. 반가움과 아쉬움이 함께 생기는 것은 그만큼 시인의 시를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위 두 시가 그런 경우인데 하나는 성형전 것인 원판을 올렸다. 이유는 그게 더 좋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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