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역마살 - 고철

마루안 2014. 12. 13. 20:55



역마살 - 고철



직관은 결코 육감을 이기지 못한다
시외버스를 탔다
근육의 살점부엔 아직도 내 청춘 몇 개는 남아 있는지
길은 낯설다
불통이라는 단어도 여인처럼 낯설다
매사 기다린다는 것이 그렇듯
두둑한 배짱이라도 챙겼는지
나는 떠나 있다


무서웠다
마치 사닥다리를 어디에 걸어야 할지를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겁이 많이 났었다
안동 시외버스터미널,
거뭇하게 하나의 도시를 덮는 우기(雨氣)의 저녁 한때
횡단보도는 푸를 때도 있었지만 붉을 때가 더 많았다


저기를 건너면 적어도 한 개의 처마는 있으리라
건너편 우뚝하게 서 있는 처마 긴 새마을금고를 본다
그제서야 나의 정처도 가벼워진다
견고한 수갑이라도 설치해 놓은 것인지
흰 벽을 한 은행집은 묵중한 게 흠이었다


바람의 촉수는 만지는 게 아니다
두고 오는 거다
장님처럼 사투리처럼 두고 오는 거다
여름 한철 녹내가 나는 것인지
그리움도 헤프면 두려운 것인지
처음으로 울음을 울었다
아무런 기별이나 기색도 없이 그는 나오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는 여기에 없었으므로



*시집, 고의적 구경, 천년의시작








서울 여인숙 - 고철



열의 여자가 울고 간 자리만은 아니다.
울음 울 것들이 많았던
그런 시절
숨어 숨기 좋은 어느 계절엔
연애도 맛있게 했었다
그런 날이면
人檢(인검) 나오는 일도 허다했다.
비도 오는 것인지
똑,똑,똑,
똑,똑,
코피가 흘렀었다.
아직도 내 주민등록증엔 순경의 지문이 앞이고 뒤고 여럿 들어차 있다.
혼자 주무셔도 무조건적으로 잘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승복 군이 날마다 나를 운동장에서 울게 하였던,
동해의 물과 백두산이 막 섞여 있던 날이 많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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