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정해진 이별 - 황학주

마루안 2014. 11. 29. 10:19



정해진 이별 - 황학주



그 길에 들어가는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밤늦도록 빗속에
천가죽처럼 묵직하게 처진
고목들이 줄 서 있고
그 길에 가는 자를 못 비추는
무뚝뚝한 등이 서 있습니다
헌 세상 같은 밤이 차고에 들고
얼룩이 배어 있는 이마를
나는 핸들 위에 가만히 찍습니다
짧지만 진행됐을 사랑이었습니다
진흙수렁에 화단 한 평은 올렸을 사랑이었습니다
내 몸만 해도 벌써 말라
조만간 당신이 뒤져보지도 못했을 테지만
신음 소리 없는 인연을 바랄 턱도 없었겠지만
사랑은, 병 깨는 소리에 놀라는
참 오래된 밥집만 남은 쓸쓸한 공원 같습니다
무변대핸데라고 당신 말하겠지만
차라리 내게서 아주 멀리 가는 당신의 전부가
이제 첫 생에 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고통 바다라는 구원이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던 거지요
움푹한 영혼이 살았던 방바닥에
입맞춤 하나가 아직 일어나지 않지만
이제야 길을 잃어도 내가 없는 당신만이 있을 뿐입니다



*시집, 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 세계사








늦도록 외로운 날 - 황학주



감꽃 근처마저 소등하나 본데
또박또박 누군가 여기 다독인 자리
밤의 순결한 봉제가 사알사알 지나간
가슴 언저리
아 충분한 두 흠집
그래, 늦도록 외로운 날이었다
가장 예쁜 것은 아파서
이불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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