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내 삶에 비겁하지 않기 - 박동식

마루안 2014. 3. 11. 06:55

 

 

 

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목적은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기 위함이다. 옛날에는 남에게 아는 체를 하기 위해서거나 정보를 찾아 지식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책을 읽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 내 삶에 보탬이 되기는 했다. 그것과 함께 내 거짓말이 함께 늘어난 것도 있다. 내 삶은 늘 그렇게 어설프면서 꼬질꼬질했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아무리 꾸미려고 해도 이것이 내 오리지널인 것을,,,

부실한 내 삶 때문에 제목이 더 끌리기도 했지만 이 작가는 오래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나처럼 이 사람도 방랑기가 몸에 사무치게 박혀 있어서 일찍부터 여행을 했다. 근 20여년 전일 거다. 이 사람이 인도를 여행하고 쓴 책이 있었다. 마지막 여행이었던가? 암튼 그때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 떠돌던 내가 많은 감동을 받았던 책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처럼 훌쩍 떠나지도 못했다.

당시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당신은 나와 참 많이 닮은 사람이군요."  밑도 끝도 없이 무었이든 갖다 붙이고 싶을 만큼 내가 외로웠던 것일까. 그러다 조금씩 책 읽는 것과 멀어졌다. 그것에 대한 가장 무난한 핑계는 먹고 살기 바빴다다. 그래도 만날 책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 내게 골프채 유행 모델이나 강남 아파트 시세 정보는 관심이 없지만 도서 정보는 늘 열려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박동식이 히말라야를 여행한 체험담이자 고생담이다. 전문 등산가에게는 인생 산이자 꿈의 산이기도 한 히말라야가 저자에게도 꿈의 공간이었다. 책에서도 밝혔듯이 등산을 좋아하지 않은 저자는 그 꿈의 히말라야를 가기 위해 정확히 말하면 히말라야 정상이 보이는 곳을 가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해발 4000미터 가까운 곳까지 오르기 위한 그의 등산 여정이 한 편의 소설처럼 거침없이 읽힌다. 좋은 글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어설픈 글쟁이들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거나 말초신경 건드리는 내용으로 독자를 현혹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친환경 무공해 내용으로도 충분히 독자를 사로 잡는다. 적어도 독자를 위한 글쓰기라면 이 정도의 글발은 갖고 있어야 한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등산도 정상에 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곳에 닿기까지의 여정을 무시할 수 없다. 백두산 천지를 지프 타고 가서 보는 것과 밑에서부터 걸어서 천지까지 올라가 보는 것 중 어느 쪽이 감동적일까. 박동식이 히말라야를 걷는 과정은 수도승의 고행처럼 처절하게 고독하다. 그 여정이 내가 그와 함께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 책은 여행기이면서도 저자가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했던 철인 경기에 도전했던 과거를 군데군데 삽입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현재의 히밀라야 여행과 과거의 철인 경기가 번갈아가면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의 삶이 비겁하지 않음이 더욱 증명된다고 할까. 글이란 읽기 쉬워야 하고 읽고 나서 여운이 남아야 한다. 자고로 여행기는 이렇게 쓸 일이다.

책에 나온 내용 아래 몇 줄 인용한다. 히말라야 정상을 보기 위해 포기하고 싶었던 숱한 고비를 견디며 힘겹게 걸어 왔는데 고산병 때문에 직진이냐 후진이냐의 기로에 놓인 상황이다. 인생도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던가.

그날 저녁 불행하게도 나는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진통제를 먹고 잠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몇 시간을 뒤척이다 결국은 침대에 앉아서 머리를 벽에 쿵쿵 박았다. 옆에서 잠들어 있는 Y가 깰까봐 어떻게 해서든 참으려 해봤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머리를 벽에 박아도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놈의 두통은 낮보다 밤에 더 심했다. 일정한 주기를 두고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반갑지 않는 손님이 찾아오는 시간은 대략 새벽 1시 무렵이었다.

밖으로 나갔다. 별들이 찬란했다. 반달이었지만 달마저도 밝았다. 이토록 달이 밝은데 별까지도 찬란한 것은 이곳이 하늘과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마을은 고요했고 모든 것은 깊게 잠들어 있었다. 그때 별 하나가 밤하늘을 사선으로 그으며 지고 있었다. 아! 지는 별을 본 것이 언제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