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자나 깨나 여행을 꿈꾸면서 가슴에 담고 살던 작가들이 있었다. 한국 산천을 떠돌며 유수의 문장을 남긴 법정 스님과 후지와라 신야의 글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세상 곳곳을 떠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바람처럼 떠돌기만 했을 뿐 마음 먹었던 장소를 못가고 말았다. 지금은 꼭 멀리 가야 여행이냐는 위로를 하며 산다. 맞다. 여행이란 꼭 무거운 배낭 메고 비행기로 떠나는 것만은 아니다. 시내 버스 타고 낯선 동네를 서성거리는 것도 여행이고 내가 사는 마을 골목길을 걷는 것도 여행이다.
오래 살았던 동네지만 새로운 곳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언제 저런 장소가 있었지? 내가 예전에 지날 때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저 가게는 어느새 간판이 바꼈군. 내가 비디오를 열심히 빌렸던 대여점 가게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등등, 돌아보면 가까운 장소의 작은 변화를 보며 여행(?)의 묘미를 느낀다.
후지와라 신야는 감성적인 사진가이자 수필가다. 그의 온전한 사진집을 본 적은 없으나 그의 책에서 만나는 사진은 오래 들여다 보고 싶은 장면들이 참 많다. 기계로 찍는 사진이면서 찍는 이의 감각이 특별한 경우라고 할까. 이런 경우에 사진은 예술이다..
사진과 글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작가가 또 있을까. 제목도 참 좋다. 인생의 낮잠, 누군가는 인생을 봄날의 짧은 낮잠이라 했거늘 소소한 그의 여행담을 따라가다 보면 인생은 참 살 만한 것이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살아있음이 좋은 것, 내 의지 대로 움직일 수 있고 아직 노안이 아니어서 두어 시간 좋은 문장을 눈에 넣어도 부담이 없다. 게다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맛난 음식을 음미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이면서 미안한 행복인가.
발리 섬을 여행하다 눈썹 달린 개 이야기를 찾아 그곳에서 발견한 견공과의 만남과 이별은 참 인상적이다. 거기다 꽃잎을 먹는 물고기라니,, 실제로 후지와라 신야는 낚시광인데 그곳에서 꽃잎으로 물고기를 낚는다. 한참 뒤의 문장에서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로 낚시질을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담과 연결되기도 한다.
대나무 낚싯대, 꽃잎 먹는 물고기, 그리고 백 년에 한 번 핀다는 대나무꽃,, 실제 그는 거의 본 사람이 없다는 대나무꽃 사진을 찍었고 이 책에도 실려 있다. 나는 이 사진과 글이 마치 봄날의 짧은 낮잠처럼 무척 몽환적으로 느껴졌다. 모든 글과 사진이 실제 그의 여행담이지만 꽤 여러 장면이 몽환적이다. 제목인 인생의 낮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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