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내면 산책자의 시간 - 김명인

마루안 2013. 3. 10. 06:42

 

 

 

김명인 선생의 책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그가 쓴 책을 전부 읽은 것은 아니다. 그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잠들지 못하는 희망>이라는 책이었다. 제목도 좋았지만 그동안 몰랐던 사람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10년도 훨씬 전이지만 당시의 느낌은 사회과학적인 소양으로 잘 다져진 신념과 가슴에 맺힌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었다. 참 치밀하게 글을 쓰는구나 이런 생각도 했다.

어쨌든 그 책으로 김명인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이후 <자명한 것들과의 결별>을 읽고 지식인으로 인정을 했다. 나만의 일방적인 인정이지만 나는 그를 마음의 스승으로 가슴에 품었다. 먼 곳으로 떠돌면서 잊고 살다가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내가 살아남기 위해 바둥거렸던 런던에서 그가 6개월을 머물렀다는 것이다.

나는 딱 10 년째 매일 아침 런던 워털루 역에서 내려 템즈강의 밀레니엄 다리를 건너 러셀 스퀘어까지 걷는다. 이 시간이 나에게는 미숙한 전두엽을 교통 정리하는 시간이다. 20분이 걸릴 때도 있고 30분이 걸릴 때도 있다. 밥벌이의 고단함과 고독의 농도에 따라 소요 시간이 달랐다. 가랑비가 내리거나 안개 잔뜩 낀 날은 그 농도가 조금 더 짙었고 출근 때는 앞만 보지만 퇴근 때는 옆도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다녔던 공간을 떠올렸다. 어쩌면 써비튼의 펍에서나 킹스턴의 채러티 숍에서 아니면 워털루 역에서 출발한 써비튼 행 기차 칸에서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을 지도 모른다. 떠난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을 리 없지만 쓸쓸함이 묻어나는 문장에서 진한 아쉬움을 느낀다.

그가 재직하는 대학에서 안식년을 얻어 허락된 시간이었으나 건강과 밀당을 하면서 런던에서 가을과 겨울을 보냈다. 이렇게 긴 시간을 아내와 떨어져 산 것도 처음이란다. 철저히 혼자가 된 기회를 중년 남자는 다소 헐렁한 일상을 밀도 있게 보냈다. 사람은 가끔 혼자가 되어보는 것이 좋다는 말이 이런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이 지식인 남성은 초빙 교수로 간 대학에 이따금 가는 것 외에는 혼자 끼니를 해결하고 책과 음악을 벗하며 런던 외곽의 한적한 소도시에서 새로운 경험을 축적한다. 그 생활의 단상을 일기 형식으로 담은 책이 바로 내면 산책자의 시간이다.

제목과도 너무 잘 어울리는 내용이다. 원래 이 양반이 글을 명료하게 잘 쓰기도 하지만 지극히 사적인 지식인의 일상을 들여다 보는 계기가 되었다. 화목한 가족이 그리웠던 나는 이런 일상에 질투심이 생긴다. 이 책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약사인 아내와 파리에 거주하며 예술을 전공한 딸, 그리고 장성한 아들이 있다.

늘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닮고 싶지는 않다. 내겐 언감생심이기 때문이다. 딸과 함께 아일랜드를 여행하는 중 너무 자신을 다그치며 사는 아빠가 걱정되었던 딸의 위로를 받으며 눈물을 흘리는 대목에서 진한 감동을 느꼈다.

특히 김명인 선생은 런던에 머무는 동안 클라식 연주회를 자주 갔다. 이 책에서 알게 된 것인데 선생은 클라식에 대한 조예가 대단했다. LP로 음악을 듣기 위한 오래된 턴테이블 때문에 그걸 구하기 위해 낯선 곳을 방문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과정도 여행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여행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내면 문화를 들여다 보는 것이 더 큰 목적일 수 있다. 인터넷 직거래를 위해 낯선 지역을 방문해 그 사람이 아끼던 물건을 넘겨 받는 마음, 그런 수고 덕분에 창밖으로 비치는 런던의 겨울 풍경을 바라보며 클라식을 듣는 행복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학생을 가르치고 글을 쓰는 그의 능력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진정성 있는 글에서 절실하게 느낀다. 적어도 그냥 살지 않겠다는 지식인의 고뇌는 억지로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불면과 갖은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지식 탐구를 놓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쩌면 수명을 단축하는 일이다. 모쪼록 선생이 건강해서 좋은 글 많이 쓰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