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정작 외로운 사람은 말이 없고 - 권경인

마루안 2014. 2. 27. 21:22



정작 외로운 사람은 말이 없고 - 권경인

 
 

더 이상 펼쳐지지 않는 우산을 버리지 못하는 건
추억 때문이다
큰 걸음으로 온 사람 큰 자취 남기고
급한 걸음으로 왔던 사람 급히 떠나가는 법
높은 새의 둥지에도 길을 여는
슬픔도 지치면 무슨 넋이 되는가 나무여,
그 우울한 도취여
삶에서 온전한 건 죽음뿐이니
우리는 항상 뒤늦게야 깨닫는다
잃을 것 다 잃고 난 다음의
이 고요한 평화
세상을 다 채우고도 자취를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외로움은 오히려
극한을 견디어낼 힘이 되는가
정작 외로운 사람은 말이 없고
죽은 세포는 가지로 돌아가지 않는다



*권경인 시집, 변명은 슬프다, 창비

 

 






슬픔의 힘 - 권경인


 
남은 부분은 생략이다
저 물가, 상사화 숨막히게 져내려도
한번 건넌 물엔 다시 발을 담그지 않으리라
널 만나면 너를 잃고
그를 찾으면 이미 그는 없으니
십일월에 떠난 자 십일월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번뇌는 때로 황홀하여서
아주 가끔 꿈속에서 너를 만난다
상처로 온통 제 몸 가리고 서 있어도
속이 아픈 사람들의 따뜻한 웃음
오래 그리웠다


산을 오르면서 누구는 영원을 보고 누구는 순간을 보지만
애써 기다리지 않아도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
사람이 평생을 쏟아부어도 이루지 못한 평화를
온몸으로 말하는 나무와 풀꽃같이
그리운 것이 많아도 병들지 않은
무욕의 정신이여


그때 너는 말하리라
고통이라 이름한 지상의 모든 일들은
해골 속 먼지보다 가볍고
속세의 안식보다 더한 통속 없으니
뼈아픈 사랑 없이는
어떤 하늘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기다리지 않아도 마침내 밤이 오고
마지막 새소리 떨어져내릴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