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 사랑에 대해 쓴다 - 유하

마루안 2013. 12. 3. 21:06



그 사랑에 대해 쓴다 - 유하



아름다운 시를 보면
그걸 닮은 삶 하나 낳고 싶었다
노을을 바라보며
노을빛 열매를 낳는 능금나무처럼


한 여자의 미소가 나를 스쳤을 때
난 그녀를 닮은 사랑을 낳고 싶었다
점화된 성냥불빛 같았던 시절들 뒤돌아보면
그 사랑을 손으로 빚고 싶다는 욕망이
얼마나 많은 열정의 몸짓들을 낳았던 걸까


그녀를 기다리던 교정의 꽃들과
꽃의 떨림과 떨림의 기차와
그 기차의 희망
내가 앉았던 벤치의 햇살과
그 햇살의 짧은 키스
밤이면 그리움으로 날아가던
내 혀 속의 푸른 새
그리고 죽음조차도 놀랍지 않았던 나날들


그 사랑을 빚고 싶은 욕망이 나를 떠나자
내 눈 속에 살던 그 모든 풍경들도 사라졌다
바람이 노을의 시간을 거두어 가면
능금나무 열매의 환한 빛도 꺼지듯

 


*시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열림원

 






 

너무 오랜 기다림 - 유하


 
강가에 앉아 그리움이 저물도록 그대를 기다렸네
그리움이 마침내 강물과 몸을 바꿀 때까지도
난 움직일 수 없었네


바람 한 톨, 잎새 하나에도 주술이 깃들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은 모두 그대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매 순간 반딧불 같은 죽음이 오고
멎을 듯한 마음이 지나갔네, 기다림
그 별빛처럼 버려지는 고통에 눈멀어 나 그대를 기다렸네



*시집, 세상의 모든 저녁,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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