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가 산이 되기 위하여 - 이근배

마루안 2013. 12. 3. 20:39



내가 산이 되기 위하여 - 이근배



어느 날 문득
서울 사람들의 저자 거리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보았을 때
산이 내 곁에 없는 것을 알았다


낮도깨비 같이 덜그럭거리며
쓰레기 더미를 뒤적이며
사랑 따위를 파는 동안
산이 떠나버린 것을 알았다


내가 술을 마시면 같이 비틀거리고
내가 누우면 따라서 눕던
나는 산을 잃어 버렸다


내가 들르던 술집 어디
내가 만나던 여자의 살냄새 어디
두리번 거리고 찾아도
산은 보이지 않았다


아주 산이 가버린 것을 알았을 때
나는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내가 산이 되기 위하여


*시집,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문학세계사

 







살다가 보면 - 이근배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 보낼 때가 있다


떠나 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 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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