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步

1박 3일 지리산 종주 2

마루안 2013. 5. 20. 20:43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커피까지 달게 마신다. 차비를 갖춰 8시쯤 세석 산장을 출발했다. 지난 밤에 내가 누운 자리 주변은 전부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시작으로 말문이 열리고 산 이야기가 펼쳐졌다. 산꾼들의 등산 경력이 화려하다. 나도 지리산이라면 꽤 여러 번 왔기에 웬만한 코스는 알고 있지만 이들의 머리 속에 든 등산 코스는 거미줄처럼 세세하다. 산장을 출발해서 뒤돌아 보니 세석 산장이 보인다. 잘 있거라. 산장아, 내 또 언제 와서 너의 무릎에 고단한 다리를 올릴 수 있을까.

 

비는 갰지만 날씨는 여전히 찌푸둥하다. 풍경은 자세히 볼 수 없어도 이런 날이 산을 걷기에는 좋다. 

 

 

등산을 하다 잠시 쉴 때면 걸어 온 길을 돌아보는 습관이 있다. 이미 지나친 길은 내 길이 아니건만,,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다. 지리산 정상에서 가장 가깝기에 일출을 보려는 산꾼들로 붐빈다. 나는 이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세석 산장으로 정했다. 날씨 때문일까. 느긋한 산꾼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착한 산꾼이 슬그머니 쓰레기를 흘리고 갔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과연 이 문구가 화장실에만 필요할까. 나는 산에서도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 하나가 지팡이(등산스틱)를 가지고 가지 않는다. 훗날 내가 허리 굽은 노인이 될 때나 필요할까. 내 스스로 걸을 수 있는데 왜 지팡이가 필요할까. 송곳 같은 스틱 끝으로 등산길을 콕콕 찍는 것을 볼 때면 산은 얼마나 아플까 미안한 생각이 든다. 가능한 음식도 간편식을 가져가고 쓰레기를 압축해 가져오는 실천이 필요하다.

 

 

통천문이다. 정상이 멀지 않았다. 이 땅에 살다 간 사람은 모두 하늘로 통하는 문을 통해서 떠났을까.

 

아득히 펼쳐진 능선에 찬사를 보낸다. 지리산은 이렇게 품이 넓건만 나는 왜 그렇게 동동거리며 살았던가 몰라.

 

죽어서도 천 년을 산다는 고사목이다. 내가 없던 천 년 전에도 내가 떠난 백 년 후에도 지리산은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지리산의 너른 품이다. 위대한 자연에 비해 내 존재는 얼마나 작고 왜소한다.

 

 

정상에는 습기를 품은 안개비가 세차게 몰아친다. 정상 한쪽에서 목을 축이며 에너지바로 요기를 했다.

 

백무동 쪽으로 하산을 위해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간다. 서울 버스가 직통으로 있어서 백무동에서 출발해 정상을 밟는 사람도 많다.

 

산 나무와 죽은 나무의 공존, 나는 언젠가 이 땅을 떠날 테지만 저 나무는 당당히 목숨을 이어가리라.

 

 

 

장터목 대피소 갈림길이다. 남쪽은 중산리로, 북쪽은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철쭉이 지고 있다. 지리산에도 곧 여름이 자리를 잡을 것이다.

 

참샘에서 잠시 쉬었다. 예전에는 여기서 물도 마시고 수통에 물도 받고 했는데 지금은 다 옛날 얘기다.

 

 

백무동에 도착했다. 1박 3일의 종주를 마쳤다. 밤 열차를 타고 새벽에 내린 구례구역에서부터 백무동에서 서울 행 버스를 타기까지가 하루 반 나절이다. 버스표를 끊고 시간이 조금 남아서 찻집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산행 후의 커피 맛이 일품이다. 산중의 고라니처럼 최소한의 흔적만 남기고 다녀가는 것, 이번 산행의 작은 실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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