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영화처럼 - 윤성택
기차가 필름처럼 레일을 지난다
어떤 환등의 불빛이 그 안에 들어 있는지
차창으로 이어진 장면 장면이
풀려지는 릴만 같아서
결말을 알 수 없는 예고편처럼
종착역이 궁금해진다
건널목 차단기가 액션으로 올라가고
갓길 트럭 앞유리는 달빛을 받아 비춘다
저녁은 단역처럼 사소해진다
그러나 영화라는 것은 일초에 스물넉 장
스쳐가는 사진의 풍경이 아니던가
정작 기억해야 할 건 어둑한 상영관
영사기에 비친 먼지의 배역,
가없이 떠다니는 존재의 명멸 같은 것
눈 감아도 아른거리는 네온간판들,
영화의 잔상효과처럼
이곳을 주시하며 좌석에 앉아 있는
또 다른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
붉은 막의 그림자를 흔들며
포장마차는 마지막 손님을 상영한다
담벼락 뒤로 사라진 겹겹의 포스터와
바람이 느리게 끼워넣는 실루엣에 대하여
나는, 영화처럼 살다갈 것을 상상한다
이 장면을 오래 기억해야 한다
*윤성택 시집, 리트머스, 문학동네
밤기차 - 윤성택
나,
밤기차를 탔었다
검은 산을 하나씩 돌려보낼 때마다
덜컹거리는 기차는
사선으로 몸을 틀었다
별빛은 조금씩 하늘을 나눠가졌다
종착역으로 향하는 기차는 인생을 닮았다
하루하루 세상에 침목을 대고
나 태어나자마자 이 길을 따라왔다
빠르게 흐르는 어둠 너머
가로등 속 고단한 길이 들어 있었다
간이역처럼 나를 스쳐간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차창 밖은 세상의 가장 바깥,
함부로 내려설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나,
기차표를 들여다보았다
정처 없이 낯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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