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지는 것들에 대한 생각 - 김형출
삐꺽삐꺽, 딸각딸각
마디 꺾이는 소리가 손가락 끄트머리에서 난다
뼈마디는 굳은살처럼 딱딱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 나이테를 닮은 나잇살
단단하게 조립된 뼈의 반란은 오래전부터 자라나고 있었다
세월은 몰캉한 병장기로 목뼈를 꺾고 있다
떨그럭 떨그럭 뼈마디 꺾이는 소리가 몸 안으로 들일 수 있다
까맣게 유입된 얇은 비명은
손가락까지 내려와 딱딱한 각질을 만들어 놓았다.
내 몸의 뼈들도 이제야 덮개가 버거워
몸속 가득한 굴 속에서 비좁은 자리를 잡으리라
말랑말랑한 연골이 망가지자
겨우 몸은 내게 자리를 내미는 것이리라
간간이 흘러나오는 뼈마디 꺾이는 소리는 찌릿찌릿
고통의 전율에 감전되면 아픈 것들은 아름답게 익어간다
나는 나의 아픔으로부터 잊히기 위해 조립된 시간을 뜯어낸다.
물리치료실에서 뼈마디를 꺾고 있을 때
또, 반란이 시작되었다
망가지는 것들은 각질을 뚫고 뼈마디를 꺾고 있다
나는 유입된 어긋난 뼈마디를 조금씩 몸속에까지
내려놓는다.
망가지는 것들에 날카로운 그림자가 드리우면
딸각딸각 뼈마디 꺾이는 소리가 들린다
삐꺽빼깍 덮개의 옴츠림에
뼈마디는 생선가시처럼 일어난다.
*김형출 시집, 달거리, 문학의전당
침묵의 124병동 - 김형출
이별은 인연처럼 묘연하고
만남은 악수처럼 반갑다
고마워, 거기에 있어서.... 아들아
젊은이의 한 고단함이 체온처럼 아리다 못해
링거 방울처럼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어둠 안에서 다가오는 절박한 기적 소리들을 보았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꽃잎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별이 서러운 것은
만남의 질투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모르면 모를수록 행복하다마는
이별 같은 인연으로
만남 같은 인연으로
어두운 밤에
숨이 찬 기적 소리를 기다리는 124동 병실들
히터처럼 따스하고 형광등 불빛처럼 환하다
백합꽃 같은 사랑이 피었다 지면
긴 겨울은 지나가고 매몰찬 신음만큼
씨앗냄새는 흥건하게 이별과 만남을 배웅하고 마중하겠지
추억의 124병동 안쪽, 이별에 관해 의문이 있다
어디에도 죽음은 보이지 않는다
124병동 안에는 없다
창밖에 어둠이 노래하고 별이 총총한 걸 봐서
나는 죽음을 모르는 무식한 자다
죽음 그 자체를 본 적이 아직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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