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아웃사이더 감별하기 - 이희중

마루안 2013. 3. 25. 00:39



아웃사이더 감별하기 - 이희중

 
 
잘 나가는 폴 메카트니나 존 레넌보다는
그들이 불쌍해 마지않던
음울한 조지 해리슨, 또는 못난 링고 스타를 더 좋아한 사람
해바라기의 보스 이주호보다는
그의 마음에 따라 자주 교체되던
짝궁한테 더 눈길이 가던 사람
비틀즈나 해바라기보다, 우연히 들른 술집
손님들의 잡담 너머에서, 그냥 켜둔 테레비처럼 노래한 다음
갈채 없이 슬며시 퇴장하는
삼류 가수의 뒷모습을 유심히 보는 사람
또는 혼자 천천히 박수 치는 사람


김일보다 장영철을 더 좋아한 사람
프로레슬링은 쇼다, 라는 그의 말을 믿은 사람
홍수환보다는 염동균을 더 좋아한 사람
말년에 그가 오른손을 접고 싸웠다는 사실을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는 사람
그들보다, 세미파이널을 피 튀기며 뛰는
삼류 복서들이, 또 그 세미파이널이
케이오로 일찍 끝났을 때에 대비하여
뛸 수 없을지도 모를 싸움을 준비하는 복서들이
있다는 사실을 더 진지하게 기억하는 사람


안정환보다는 윤정환을 더 좋아하는 사람
우리 편이 골 넣었을 때
벤치에 앉은 후보 선수들의 표정을 살피는 사람
국가 대표가 되지 못한 프로 선수,
1군이 되지 못한 2군 선수들을 더 걱정하는 사람
현대차 안 타고 굳이 대우나 쌍용차 타는 사람
아주 옛날에는, 1등하던 오비보다는 크라운을 더 좋아했고
얼마 전, 크라운이 하이트로 1등 하자 이젠 오비를 마시는 사람
대접받는 애완 동물 보면 속이 거북한 사람
꼬리 치는 것 보기 싫어 개를 안 키우는 사람
조세형이나 신창원이 잡히지 않기를 바라던 사람
이종대, 문도석, 그리고 지강헌 또는 비지스의 홀리데이
이런 이름들을 술자리에서 꺼내기를 즐기거나
누가 꺼내는 것을 반기는 사람
엄숙한 자리에 앉으면 사지가 뒤틀리는 사람
정장한 제 사진은 보관하지 않는 사람
여간해서 넥타이를 안 매는 사람
평창동, 압구정동, 대치동이 남의 나라 같은 사람


학창 시절, 선생이 이름 기억해 부르면 불편했던 사람
반장 패거리보다 사고뭉치들과 어울리던 사람
자신이 바로 사고뭉치였던 사람
창간할 무렵에는 안 보다가 요즘 와서 한겨레 보는 사람
돈 먹여 아들 군대 안 보낸 사람은
대통령 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군대 갔다온 사람
통일을 사심 없이 바라는 사람
이 세상이 뒤집혔으면 하고 가끔 바라는 사람
실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더 자주
더 편안하게 전원 주택을 꿈꾸는 사람
아웃사이더이다, 아니다에 관심 없는 척하지만
이런 시 읽으면서 동그라미 치며 자신을 감별하고 있는 사람

 







돌아보면 혼자였다 - 이희중

 
 
피가 붉다는 풍문을 믿지 않았다
눈에 비친 세상은 흑백이었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연인이 좋아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 다녔고
연인은 그가 입은 옷의 색깔을 알아보지 못했다
세상은 어딘가 구겨져 있었고 사람들은
그중 높은 곳을 함부로 걷다가 마구 굴러떨어져
낮은 곳에 쌓여 가만히 있었다 그러므로
지구가 둥근 것은 한낱 소문에 지나지 않았다
취해 길을 걸으면 언제나 벼랑에 닿았고
돌아보면 혼자였다 함께 술을 마시다가
돌연 흩어져 저마다 다른 골목을 헤매다녔다
색맹과 무지와 미로의 한철 지나고
색을 배우고 진리와 지혜를 배우고
이튿날 아침이면 다 잊어버리고 헛되이 색이 보인다고
지구는 둥글다고 거짓으로 떠들며
아는 길만 걸어다녔다 그 사이 또 한철이 왔고



*시집, 참 오래 쓴 가위, 문학동네

 
 



# 아웃사이더 감별하기라,, 스마트폰으로 한다면 모를까 요즘 젊은 이들이 그 감별을 할 수 있을까. 1970, 80년대의 대중문화 흐름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 나중에 마흔이 넘어가면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다. 詩도 함께 나이를 먹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