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 정해종
그냥 지나가야 한다
말 걸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모든 필연을
우연으로 가장해야 한다
누군가 지나간 것 같지만
누구였던가에 관심 두지 않도록
슬쩍 지나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죽어야 한다
경우엔 따라선
몇 번을 죽을 수도 있지만
처절하거나 장엄하지 않게
삶에 미련 두지 말고
되도록 짧게 죽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죽음으로
살아남은 자의 생이 더욱
빛나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이란 배당 받는 것이다
주어진 생에 대한 열정과 저주,
모든 의심과 질문들을 반납하고
익명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
세상을 한번, 휙-
사소하게 지나가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끝끝내
우리는 배경으로 남아야 한다
*시집, 내 안의 열대우림, 생각의 나무
단순한 희망 - 정해종
산 위에서 밭을 보면
밭이 밭전 자로 보이고
밭에서 산을 보면
산이 뫼산 자로 보인다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구름 속에서 내려다보면
세상은 지도처럼 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별에서 보면 지구는
지구의로 보일 것이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의 마을에 산다
그 속에 내가 발붙이고 있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희망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믿음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제나 영화처럼 - 윤성택 (0) | 2013.03.28 |
---|---|
아웃사이더 감별하기 - 이희중 (0) | 2013.03.25 |
망가지는 것들에 대한 생각 - 김형출 (0) | 2013.03.16 |
혁명은 거기까지 - 박노해 (0) | 2013.03.16 |
편지, 여관, 그리고 한 평생 - 심재휘 (0) | 2013.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