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밥보다 더 큰 슬픔 - 이수익

마루안 2013. 2. 9. 05:29



밥보다 더 큰 슬픔 - 이수익



크낙하게 슬픈 일을 당하고서도
굶지 못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 일이
슬픔일랑 잠시 밀쳐두고 밥을 삼켜야 하는 일이,
저 생 본능이,
상주에게도, 중환자에게도, 또는 그 가족에게도
밥덩이보다 더 큰 슬픔이 우리에게 어디 있느냐고.



*시집, 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 시와시학사

 







17년 만의 여름 - 이수익



이 여름을
한 번 울기 위하여
매미 유충은 땅 속에서
17년 간의 세월을 보낸다고 했다.


깜깜한 지옥 어둠과 고독을 이겨내며
한철을 위한 준비가
기도처럼 오래오래 이루어졌으리.


지금
한여름 불볕 뜨겁게 내리쬐는 한낮
거리의 가로수에 매달려
매미는 17년 동안 숙성시킨 침묵의 향기를
저 쨍쨍한 울음소리로 토해내고 있다.


여름 지나면
목숨도 그칠,
짧은 생의 핏빛 절창絶唱이
8월 염천을 건너고 있다.





# 두 편의 시 모두 삶을 향한 시인의 깊은 사유가 담겼다. 며칠 울다 일생을 마감할 매미의 삶이나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인간의 삶이나 우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 점 먼지의 일생 아니겠는가. 이렇게 말하고 나니 조금 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