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마지막 술집을 찾아서 - 문동만

마루안 2013. 2. 6. 07:23



지막 술집을 찾아서 - 문동만



내게는 분주하지 않은 술집만 찾아가는 지병이 있다
비는 가늘게 내리고 우산 위로 톡톡 튀는 빗방울이
파격이 없는 내 근본을 조롱하리라는 걸 알고 있다 
고작 술빚을 생각하며 그 걱정에 술이나 마시는 것


정권이 너희들의 마음대로만 이루어지듯
간혹 있는 주접 만큼은 나의 의도대로만 이루어졌다
고작 곰팡내 찌든 지하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통속적인 음담과 어울리지도 않는 옛 노래를
부르며 객기에 당도하는 것


나도 모르는 나를 부르며 나를 모르는 너를 부르며   
여기까지가 나의 마지막 파격

여기까지가 내 밤의 정거장
아, 아비제비처럼 젖어 대자로 뻗은
내 발을 씻어 주기도 하는 아이들아
미안하군, 살이 찌지 않은 아내여
홀로 술 먹는 밤조차 이해해 주는 당신


내가 버는 대로 소비할 것임을
빚을 내어 술을 먹고 사람들을 만날 것임을 안다
그러니 나는 부자도 노예도 자발적 가난의 산골에도
기거할 수 없으리라
사는 대로 이 도시에 살아질 것이다, 사라질 것이다
내가 단골이 되려 했던 적당한 술집들은 다 망했지만
마지막 술집을 찾아야 한다


나는 술병이나 앓다 죽지 않을 것이다
다시 힘을 내어 걸어야 한다 그 침침한 술이라도 먹고
살아나야 한다 파격적인 발걸음으로 내딛어야 한다
어딘가 있을 마지막 술집을 찾아서 



*문동만 시집, 그네, 창작과비평



 





아직은 저항의 나이 - 문동만



눈꽃 너는 피어라 나는 네 안에 지마
그래도 울지 않으리
이마 위에 아이 눈썹만한 눈이파리
예수가 죽어간 나이
시인이 요절한 나이
초월하지도 못했네 순응하지도 않았네
아 아직은 저항의 나이
내가 쓴 길도 내가 지운 길도
덮고야 마는 단호한 눈발이여
앞선 발자국 하나 없이 내 흔적을 남겨서
당신에게 가야 하네
눈꽃 피는데, 당신에게 닿기도 전에
눈꽃만 피는데,
우두둑 솔가지 부러지고
나는 먹먹한 눈물 한 방울로
길을 녹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