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꿈길에서도 길은 어긋나고 - 박남준

마루안 2013. 2. 6. 07:15



꿈길에서도 길은 어긋나고 - 박남준



오랜 길가에 서면 간절하게 밀려오는 사람
비가 내려야 온몸 젖어가는 것은 아니다
나 떠나온 많은 날에도 잠들지 않고
천천히 아주 깊어져서 숲은 잠겨가고
취하지 않고는 갈 수 없다


길 끝에서 돌아오면 산중 가득 눕지 않고 서성이는
어둠들의 그 수목 같은 목 긴 기다림
쓰러지며 내게 안겨 무너져 올 파도 같은 울음
차마 볼 수 없어서
서둘러 불 밝힐 수 없어서 발길 돌리면
길은 다시 정처없고


참 아득하다 별들
낡을 대로 이미 바랜 꿈 하나
아름답다 그대만이 나의 그리움이던 목숨이던 날들
갈 곳 없는데 이제 지쳐 돌아갈 수 없는데

왜 나는 아직껏 버리지 못하는 것이냐
비틀거리며 끌어안고
흔들리는 것이냐



*시집,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창작과비평


 





 
기다렸으므로 막차를 타지 못한다 - 박남준



남은 불빛이 꺼지고 가슴을 찍어내리듯
구멍가게 셔터문이 내려지고
얼마나 흘렀을까
서성이며 발 구르던 사람들도 이젠 보이지 않고
막차는 오지 않는데
언제까지 나는 막차를 기다리는 것일까


춥다 술 취한 사내들의 유행가가 비틀거리다
빈 바람을 남기며 골목을 돌아 사라지고
막차는 오지 않을 것인데 아예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할 것처럼
발길 돌리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어쩌면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는 일 같은지
막차는 오지 않았던가 아니다

막차를 보낸 후에야 막차를 기다렸던 일만이
살아온 목숨 같아서 밤은 더욱 깊고
다시 막차가 오는 날에도 눈가에 습기 드리운 채
영영 두 발 실을 수 없겠다





*후기


길로 나아갔다. 길을 잃고 헤매었으며 가두지 않았으나 스스로 자라난 막막한 그리움이 나를 가두었고 거기, 세상과 그 세상의 그늘 언지리에 들어서지 못하고 떠도는 자의 슬픔이 업처럼 드리웠다.


나는 이 시집이 어쩔 수 없는 슬픔의 무게를 가진 세상의 한편에 쓸쓸하게 다가갔으면 한다.


오래 머물렀다. 이제 떠나갈 수 있을까. 영혼이 나가면 몸이 비로소 대지의 삶을 얻듯이 산중, 이 외딴 집도 무너져가겠다. 오래지 않아 병든 사내의 슬픔도 잊혀져갈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