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쓸쓸해서 머나먼 - 최승자

마루안 2013. 1. 12. 06:22



쓸쓸해서 머나먼 - 최승자



먼 세계 이 세계
산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먼 데 갔다 이리 오는 세계
짬이 나면 다시 가보는 세계
먼 세계 이 세계
산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노자가 살았고
장자가 살았고 예수가 살았고
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
먼 세계 이 세계
 

(저기 기독교가 지나가고
불교가 지나가고
道家가 지나간다)

 
쓸쓸해서 머나먼 이야기올시다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 문학과지성

 







일찌기 나는 -  최승자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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