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갈대 - 신경림

마루안 2013. 1. 11. 06:33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시집, 농무, 창작과비평

 







파장(罷場) - 신경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빚 얘기
약장수 기타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싯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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