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덧없는 몸 - 홍신선
인간은 베잠방이 방귀 새듯
가뭇없이 사라지고 뭇 기관 허물어진
짐승인 몸만 그렇게 덧없는 몸만 남았다.
오냐 오오냐 말 안 해도
네 마음 다 안다고 낮은 소리 건네던
향로의 다 탄 무연향(無煙香)이 무시로 떨어져 내리고
밤 이슥해 나와 본 영안실 밖
내 등 뒤 하늘에는
옆구리에 소변 주머니 달고 곡기 끊은
그러나 편안한 얼굴로 잠 깬 구름 하나 떴다.
그 멀지 않은 곳 마침 열여드레여서
누군가 먼 길 채비로 잘 닦아 꺼내 논
신발 한 짝이 유난히 환하다.
그동안 궂은일 다 거두어 간다는 그동안 뭇 인연들 고맙다는
그니가 마지막 머무는 이승.
*시집/ 가을 근방 가재골/ 파란출판
낮달이 뜨는 방식 - 홍신선
살아서 사람들의 이 가슴에서 저 가슴으로 철벙철벙 물탕 튀며 건너뛰었던
그의 몇몇 발자국들
사나운 시간의 물결에 덧없이 씻겨 나갈 것인데
사진 속 그가 속없이 장난처럼 웃는다.
영결종천을 고한 뒤
화장로에서 완벽하게 해체되고 난
그는 다시 몇 줌 골분으로
하늘 어느 부분에서 어느 부분으로 또 철벙철벙 건너뛰어 가는 것 아닐까.
여전 지상엔 지옥철 출근하고 어깨 맞부딪치고 밀치며 아귀다툼하듯
커피 컵 들고 희희덕거리며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한 곳이라고
일상은 그래도 즐겁지 않느냐고
인간들 다시 생각 바꿔 더 속 깊이 삶을 껴안는 것을·····.
접객실 밖 서천(西天)에는
슬픔이 마려운,
하지만 꾹 눌러 참고 있는
저 얼굴
초여드레 낮달이 문득 와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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