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저물녘의 운산 - 변홍철

마루안 2022. 8. 2. 19:22

 

 

저물녘의 운산 - 변홍철

 

 

문자메시지로 알려주는

대출이자는 참 꼬박꼬박 나간다

 

꼬박꼬박 내가 지불할 이자를 알려주는

저 근면한 세상의 파쇄기에

옷자락이 말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그대도 나도 오늘 충분히 투쟁하였다

 

이제 가족들이 나가서

하루 종일 일하며 인색하게 묻혀 올

신선한 바람을 찬거리 삼아

어두운 불을 켜고 밥상을 다시

차릴 시간이다, 1954년

김수영의 '나의 가족'은

지금 그대와 나의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쟁을 겪은, 겪고 있는 백성들에게

이런 건 표절이 아니다

 

아직 나에겐 두 병의

막걸리가 남아 있다

아마 금요일까지 남겨놓긴 어려울 듯하다

 

꼬불치지 말자, 절약하지도

저축하지도 말자, 새로운 날들에는

새로운 술이 반드시 채워질 것이라는 믿음 없이

어떻게 사랑의 모험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랴

 

 

*시집/ 이파리 같은 새말 하나/ 삼창

 

 

 

 

 

 

바람개비 - 변홍철

 

 

라디오 크게 틀고 다니는 저 무례한 노인들에게도

조금은 관대해지는 기분

날이 쌀쌀해지고 그림자 길어진 탓이다

 

공원에는 까치도 많고, 개들도 많다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청년 둘이 와서 말을 건다

 

부지런히 돌고 있는 바람개비들

언제나 걷는 길도 새로운 길이라는 듯이

뻔한 바람도 감사하다는 듯이

 

돌고 있는 이 명랑한 행성의

일몰 가까운 시각

 

낡은 그림자의 고관절을 달래가며

다시 조금 더 걸어보자

 

 

 

 

# 변홍철 시인은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살고 있다. 시집으로 <어린 왕자, 후쿠시마 이후>, <사계>, <이파리 같은 새말 하나>가 있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노인의 예감 - 부정일  (0) 2022.08.03
안식 - 최백규  (0) 2022.08.02
모서리 - 서화성  (0) 2022.08.01
이 거대한 세상에 홀로 - 강회진  (0) 2022.08.01
티눈이 자란다 - 양아정  (0) 2022.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