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티눈이 자란다 - 양아정

마루안 2022. 8. 1. 21:29

 

 

티눈이 자란다 - 양아정

 

 

어떤 사람에겐 터널이

누군가에겐 지름길이다.

계단이 납작 엎드려 공황장애를 앓고

바람은 계단의 꼭대기에서 춤춘다.

먹구름을 배달한 까치들

조명 꺼진 터널을 지나가는데

셔터를 내린 그의 눈은 아직 겨울이다.

아무도 그의 벨을 누르지 않아

봄빛은 창을 두드리는데

날 선 불안은 손발을 창밖으로 자꾸 던져버리고

차곡차곡 쌓이는 먼지들의 임대료는

벚나무 옆 싱싱한 포커레인이 독촉한다.

뒷모습뿐인 거울

소파가 침대가 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불황과 공황을 오독하지도 않는다.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낙서가

이 벽 저 벽 뛰어다닐 때

벚꽃의 공약은 일용직 잡부를 재배할 거라는 촉지도

이건 서막에 불과할지도

아무도 모른다.

흰 달은 셔터를 두드리는데

 

 

*시집/ 하이힐을 믿는 순간/ 황금알

 

 

 

 

 

 

나는 컵, 라면 - 양아정

 

 

바다와 강이 만나는 그 어느 지점에 앉아있으면

파도가 시멘트 바닥을 간 보듯 올라온다.

금 그어진 세상 밖을 기웃거리며

돌아선 발걸음은 잽싸게 미끄러져 간다.

컵 속에 웅크리고 있는 파도

적당량의 물을 만나 풀어지고 부드러위지는

즉석 바다,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수위를 넘어선 파도

발 없는 말이

매립지를 떠돌아다닌다.

파도가 거세되는 뚜껑을 닫고

비로소 되살아나는 액체의 감정들, 면발들

애초에 갱년기를 겪어야만 하는 종족인지 모른다.

포장된 하늘과 잘 분쇄된 구름이 첨가된

수프는 문패처럼 걸려 있고

선을 지키는 자만이

면발 뼛속까지 다가서는 풍만한 저녁

주둔지가 없어도

적셔줄 물기만 끓일 수 있음

양식 같지 않은 양식이

반가 사유하는

컵 속

미륵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