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장소 신파적 - 이용훈

마루안 2022. 7. 30. 21:09

 

 

장소 신파적 - 이용훈

 

 

산자락 온기 찾아 모여든 집들 벌어진 틈에 풀칠 걱정 잊으려 해도 근심은 달빛 쬐는 산맨치로 그림자 짙게 얼굴들 덮는다 덮는데 뿌리박는 것은 그런 것인가?

돌바위에 난생으로 긁힌 살결 달 참 밝은데 얼룩 한점 없네, 없어서

계단 내려가는 아이 거친 숨에 볼 금세 빨개지고 소학교 기억, 니은, 디귿, 리을, 미음.. 읽고 나면 그만 마쳐도 괜찮다 해서 부둣가 하루떼기 하역으로 막내새끼 시작했네 시키는 거 하라는 거 나서는 거 말리는 거 시린 거 아린 손 마디마다 후— 불년 따끔 찌르던 손은 피딱지 피어나고 지고나면 배 타고 그물 까는 어부도 해보겠다 했지

그래야만 해서 살아나는 것은 물때 맞춰 나가고 오가는 거라 했네

파도에 온몸 얻어터지니 지켜보던 보시더니 남해 바람은 만신창이로 선창 후렴 없이 귀띔이라도 건넨 것인가

저물녘은 참 짧아서 천근 지고 삭신은 계단 오르는데 구불구불 끝없네

동네 참 옹골진 것을 이제서야 봤는가

그대는 그대여 쩍쩍 갈라져 손금 사방 뻗은 시멘트 계단 올라서는 조금새끼 불현듯 뒷모습이 웅그러져 염 없어라 그대여 그대는 수십년의 세월 흘러도 이곳 오르내림에 구절양장을 그대라 말할 수 있을까?

물마루가 참 벌게서 녹슨 난간에 기댄 등짝 멀린 흩뿌린 섬들 보는 겐가

구름 사이 내려오는 햇빛 보는 겐가 품삯 넙죽 받아 꼭 쥐고 있는 겐가 대체 무엇을 부여잡고 있는 겐가 그의 눈알 바라보고 있자니 산 아래 오거리부터 불어오는 짠내 땀내 묵은내 전 숨에 가슴 시네 시어

잡어 구워 저녁상에 올리면 걸쭉한 탁주에 몸을 맡겨도 좋으이 옛노래 불러도 좋으이

현장 숙소 빙 둘러앉은 대포 자리 했던 말 오늘도 읊어대니 내 입에서 입으로 술술 내뱉고 있으이

징글징글하다 저놈의 영감탱이

 

 

*시집/ 근무일지/ 창비

 

 

 

 

 

 

고시원 침대는 뭐다? - 이용훈

 

 

세탁실에서 탈수기가 싸움질이다 몇호실 빨래와 시비가 붙었을까? 추가요금 내시고 조용한 방으로 옮겨 가세요, 총무가 공고한 밤이다. 누구는 시끄러운 거 모르고 자빠녔냐? 조문 없으면 싸움이나 말릴 것이지. 누런 런닝구를 빨랫비누에게 던져버렸다. (확— 무심결에) 피부 갈라진다고, 체중 줄었다고, 농담 걱정 반반 하던 빨랫비누의 하소연을 몰라봤다. 체육관 샌드백도 아니고 누런 런닝군데, 세면대에서 게거품을 물고 죽자 살자 비비고 싸우는 소리에 고시원이 떠들렸다 가라앉았다. 젠장,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도 없다. 말리던 손과 팔은 만신창이 되고 말았다. 잠이나 잘걸. 옆방에서 벽 한번 두드렸을 법도 한데. 벽 타고 넘어간 소리에 애청자가 되어버렸나? 런닝구는 짜도 짜도 마르지 않고, 빨랫비누 거품은 그대로 눅눅한 밤이 되어버렸다. 나를 아껴야 해서 이 한 몸 눕히려는데,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 한다.

 

 

 

 

# 이용훈: 2018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