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살아간다 - 정덕재

마루안 2022. 6. 10. 21:39

 

 

살아간다 - 정덕재

-또 201호

 

 

남자는 닷새 뒤에

이런 날은 족발이 어울린다며

프랜차이즈 족발집 상표가 또렷한

하얀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1층에서 2층까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201호는

족발 예찬론자이다

 

땡볕에도 소나무는 푸르렀고

한 달 넘게 비 구경을 하지 못했다

 

늦은 밤까지 30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온도는

족발을 푹 익히는 날이었다

 

정육점에서 나오는 부인을

보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밝은 표정으로 나온 부인은 초혼이고

즐거운 얼굴로 올라가는 남편은 재혼이다

 

다음 날 가족 한 명은

곱창이 들어 있는 검정 봉지를 높이 들어

이런 날의 아름다움을 칭송할 것이다

 

201호의 돼지고기는

하루는 족발이고

하루는 곱창으로 살아간다

 

 

*시집/ 치약을 마중 나온 칫솔/ 걷는사람

 

 

 

 

 

 

뜀박질 - 정덕재

-601호

 

 

다섯 살은 걷지 않는다

엄마가 부르면 웃으며 뛰고

아빠가 부르면 낯선 사람이라 뛴다

장난감을 가지러 갈 때는 친구라서 뛰고

화장실에 갈 때는 물놀이가 즐거워 뛴다

 

열 살까지 뛰어라

쉰 살이 넘어도 뛸 수 있어요

스무 살까지만 뛰어라

예순 살이 되어도 뛸 수 있어요

 

뛰어본 지 오래된 사람은 쉰여섯 살이고

잘 뛰는 사람은 다섯 살이다

 

뛰는 쪽과 누워 있는 쪽

어떤 무리로 들어갈지

염탐하는 제3의 인물이

초인종을 눌러 안부를 묻는다

뛰는 사람은 뛰어가고

기대어 있는 사람은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