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 - 정덕재
-또 201호
남자는 닷새 뒤에
이런 날은 족발이 어울린다며
프랜차이즈 족발집 상표가 또렷한
하얀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1층에서 2층까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201호는
족발 예찬론자이다
땡볕에도 소나무는 푸르렀고
한 달 넘게 비 구경을 하지 못했다
늦은 밤까지 30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온도는
족발을 푹 익히는 날이었다
정육점에서 나오는 부인을
보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밝은 표정으로 나온 부인은 초혼이고
즐거운 얼굴로 올라가는 남편은 재혼이다
다음 날 가족 한 명은
곱창이 들어 있는 검정 봉지를 높이 들어
이런 날의 아름다움을 칭송할 것이다
201호의 돼지고기는
하루는 족발이고
하루는 곱창으로 살아간다
*시집/ 치약을 마중 나온 칫솔/ 걷는사람
뜀박질 - 정덕재
-601호
다섯 살은 걷지 않는다
엄마가 부르면 웃으며 뛰고
아빠가 부르면 낯선 사람이라 뛴다
장난감을 가지러 갈 때는 친구라서 뛰고
화장실에 갈 때는 물놀이가 즐거워 뛴다
열 살까지 뛰어라
쉰 살이 넘어도 뛸 수 있어요
스무 살까지만 뛰어라
예순 살이 되어도 뛸 수 있어요
뛰어본 지 오래된 사람은 쉰여섯 살이고
잘 뛰는 사람은 다섯 살이다
뛰는 쪽과 누워 있는 쪽
어떤 무리로 들어갈지
염탐하는 제3의 인물이
초인종을 눌러 안부를 묻는다
뛰는 사람은 뛰어가고
기대어 있는 사람은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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