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망막하다 - 박수서

마루안 2022. 6. 6. 21:42

 

 

망막하다 - 박수서

 

 

창문을 닫다 창밖을 보니 달이 무당벌레처럼 동그랗고 예뻐

한참을 바라보다 심야영화관 영사기처럼 잘 때를 놓쳤어

구슬치기 구슬 알처럼 사방팔방 방안을 굴러다니다

한쪽 구석에 겨우 박혀 소등했겠지

피곤한 아침 세수하러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는데 왼쪽 눈이 토끼 눈이네

실핏줄 터진 눈이 아무래도 신경 쓰여 읍내 안과에 갔어

의사는 혈관을 살펴보자 안구 엑스레이를 찍고 둘이 모니터를 보는데,

망막하데

망막 원둘레에 간신히 닿지 않은 검은 점 하나 혈관 끝에 박혀 있는 거야

강아지나 고양이 기생충이 눈에 들어가 되어버린 상처일 수 있고

만약 상처가 커진다면 망막을 덮어 앞을 못 볼 수 있다는 거야

아, 살며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 상처의 성장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어

그것이 자랄지, 즐겁게 춤을 추다가도 착하게 그대로 멈춰있을지

너나 나나 모르는 일이잖아

살며 잘못인지 모르고 주의 깊지 못해 흘려보았을 맹점이 되듯,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망막은 그 맹점을 함께 품고 살아가라 있는 걸 거야

그래 지금 나는 상처의 성장 따위로 닥쳐올 미지의 공포에,

망막할 일이 아니라

내 삶을 진짜 망막하게 하는 그물막처럼 얇은 단서라도 찾아야 해

그래, 그게 잘 보고 잘 사는 일이야

 

 

*시집/ 내 심장에 선인장꽃이 피어서/ 문학과사람

 

 

 

 

 

 

중년 - 박수서 


나흘 밤낮 비가 내린다
잔잔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속이 비리다
비린 비 때문에 멀미가 난다
생선처럼 비늘을 긁어내면
여리고 아픈 살을 다 발라내면,
나도 다시 싱싱한 물고기처럼 촐랑거리며
물 안을 헤엄칠 수 있을까
병든 아가미를 치유하고
수풀에서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창밖에 있는 것인지
창안에 있는 것인지 마음을 모른다
어떡하든 열어도 아주 좁거나
그 너머 단단한 창이 또
입 다물고 있을지 모른다
아주 멍청하게 또는 그런 척 사는 일이
그나마 풀꽃이라도 바라보며
목숨을 견뎌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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